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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羅聘(1733~1799)의 <鬼趣圖> 연구

최에스더

명지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8 · No. 300 · pp. 28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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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羅聘(1733~1799)은 양주화파의 대표적 화가로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주화단의 화가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揚州畵舫錄』의 저자 李斗(1749~1817)는 나빙을 논하며 “초기에 金農에게서 매화 그림을 배웠고, 이후에는 옛 화가의 도석인물화를 방작하였다. 그가 그린 <鬼趣圖>가 있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라 언급함으로써, 묵매도나 도석인물화보다 그의 <귀취도>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렇기에 본고는 이러한 나빙의 <귀취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나빙의 생애를 요약적으로 살펴 본 후 <귀취도>를 비롯한 귀신그림이 양주에서 제작된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귀취도>의 각 장면을 제시와 더불어 도상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미술사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사행 문인들이 <귀취도>에 대해 남긴 언급들을 살펴봄으로써 한중미술교류에 차지하는 <귀취도>의 의의를 재고하고자 한다.*br* 귀신을 그리는 전통은 이미 3세기 저술된 『韓非子』에도 언급된 바 있으나, 이색적인 소재를 즐겨 묘사하였던 18세기의 양주화가들은 특히 귀신그림을 즐겨 제작하였다. 그중에서 8장면으로 이루어진 홍콩의 霍寶材가 소장한 나빙의 <귀취도>는 127개의 문인들의 발문을 달고 있어 그 규모 면에서 단연 양주 鬼趣畵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곽보재 소장 나빙의 <귀취도>는 늦어도 1766년에 완성되었으리라 유추된다. 그 외 기년이 있는 문인들의 제발은 나빙의 첫 번째 북경 체류기간(1771~1773)과 세 번째 북경 체류 기간(1790~1798)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통해 양주와 북경을 왕래하며 활동하던 나빙이 북경 문인과의 교류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적극 활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br* 나빙은 담채와 세필을 조화시켜 귀신 세계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개성적으로 표현했으며, 청대에 유행하던 귀신 도상들을 적절히 화폭에 녹여내기도 하였다. 나빙은 <귀취도>를 통해 귀신이 가진 ‘醜’함으로 인간의 음험한 악행을 비유하였으며, 귀신 간 주종관계를 설정하여 인간세상의 부조리를 암시하였다. 이 같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당시에 유행했던 『聊齋志異』를 비롯한 『子不語』, 『閱薇草堂筆記』등의 기담소설의 주제의식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귀취도>가 18세기의 사회 경향과 밀접한 영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Keywords: 나빙(羅聘Luo Ping)귀취도(鬼趣圖The ghost amusements scroll)양주화파(揚州畵派Yangzhou school)한중문화교류(韓中文化交流Korea and China`s cultural exc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