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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대한제국기 어진 모사 및 도사 관련 오봉병 연구

손명희

국립문화유산연구원

Published: January 2025 · No. 327 · pp.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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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고종이 황제권 강화를 적극 추진해 나간 1900~1902년에 잇따라 이뤄진 어진 제작 관련 의궤 기록을 토대로, 어진 제작 절차 및 장소에 따른 오봉병의 유형과 기능을 고찰하고 유형별 오봉병의 장황을 분석하였다. 이를 토대로 현존 유물과 비교함으로써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봉병을 확인하고 화풍의 양상을 살폈다. 이 시기 어진 제작을 위해 삽병, 첩병, 삼면 장자 등 다양한 유형의 오봉병이 사용되었다. 삽병은 어진 제작과 관련해 새롭게 나타난 유형으로, 어진 모사 시 사용된 괘봉기처럼 전봉 장치를 설치했으나 일월오봉도와 비단장황으로 의물로서의 위상과 품격을 갖추어 어진을 펼쳐 모시는 물리적 기능과 함께 어진의 위엄과 권위를 표상하는 상징물로 기능하였다. 이에, 삽병은 고종과 신하들의 어진에 대한 앙첨을 위해 배설되기 시작해, 어진의 임시 봉안 공간 조성 및 유지초본 봉심에도 활용되는 등 그 쓰임이 확대되었다. 첩병풍은 사첩, 육첩, 팔첩으로 다양한 형식을 보였으나 모두 어진의 임시봉안만을 위해 배설되었다. 이 시기 첩형식의 오봉병은 기존 녹색 회장이란 전통을 고수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색 회장의 사용과 상선ㆍ하선의 등장과 같이 장황 구성에 있어 변화상을 보였다. 모사된 어진의 선원전 봉안 시에는 삼면 장자 형태의 당가오봉병이 상설 감실 공간을 조성했으며, 동일한 장황 구성이 지속되었다.*br* 이상의 문헌 기록 분석 내용과 현존 오봉병을 비교함으로써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 삽병>,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 병풍>이 각각 1901년 칠성조 어진 모사 당시 모사처소인 흥덕전과 칠성조 신본 어진을 임시 봉안한 중화전에 배설된 병풍이며, <신선원전 제1실 오봉병>이 1900년 경복궁 선원전 제1실 증건 당시 제작되었다가 1901년 중건된 경운궁 선원전으로 옮겨진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들 병풍은 삼각형에 가까운 모습의 봉우리, 가운데 봉우리와 나머지 네 봉우리의 두드러진 높이 차이, 대각선으로 구획한 듯 일렬로 연이어 그려진 물결 등에서 유사성을 보였다. 특히,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병풍은 <신선원전 제1실 오봉병>을 간략화해 제작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들 병풍에 묘사된 주봉에 비해 낮고 작은 나머지 봉우리들, 가운데 봉우리를 향해 기울어진 듯한 좌우 봉우리의 모습은 유교적 군신관계를 형상화하며 전제적 황제권의 강화를 추진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Keywords: 오봉병(five peaks screen)일월오봉도(painting of the sunmoonand five peaks)어진(royal portrait)장황(mounting)대한제국기(Korean Em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