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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회암사지 출토 석조불상편 고찰

강희정

서강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21 · No. 311 · pp. 8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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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여말선초에 가장 중요한 불교사찰 가운데 하나였던 양주 회암사는 지공과 나옹, 무학이 주석하기도 했던 중요한 고려 사찰로 조선 초기에도 왕실 원찰의 기능을 했다. 이색이 기록에 남긴 15척 크기의 불상과 10척의 관음상의 실체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회암사지에서 발굴된 소형 석조불두편과 불신편만으로 회암사에 봉안된 불교조각의 실체를 규명하기는 무리이다. 하지만 발굴된 파편과 문헌기록, 양식적 비교를 통해 소형의 석조불상 파편들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미 이색이 언급한 대형의 불상들이 회암사의 중요 전각에 봉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효령대군은 불상을 제외한 기와나 부도 건립을 중심으로 불사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그는 소형의 석불들을 조성하여 중심전각인 보광전이 아닌 다른 전각에 모셨을 것이다.*br* 기존 연구에서는 발굴된 소형 석조불두편의 재료를 응회암이나 사암으로 추정했는데, 실제 암석과 비교해보면 암질, 돌의 입자, 색과 균질성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회암사지 출토 불두편과 불신편은 화강암으로 조각한 우리나라의 일반 석조 불상과는 달리 드물게 흰빛을 띠고, 입자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고운 암질을 지니고 있다. 그에 따라 고령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향후 이들 석조 조각편들의 재료를 분석하여 보다 정밀한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암석 성분이나 재료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여말선초 회암사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대형 예배상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는 조선 전기 왕실 자복사로 기능한 회암사에 대한 유생들의 적대감이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양주 회암사에 이어진 왕실의 지원과 종친의 불사, 다른 왕실 불사와의 비교에 대해서 좀 더 후속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Keywords: 회암사지(檜巖寺址Hoeamsaji-temple Site)효령대군(孝寧大君Prince Hyoryeong)불두편(佛頭片Fragment of Stone Buddha-head)응회암(凝灰岩Tuff)고령석(高嶺石Kaolinite)사암(砂岩sand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