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조선 후기 刺繡의 顧繡 受容과 展開
문화재청
Published: January 2021 · No. 311 · pp. 45-86
Full Text
Abstract
본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사인물도〉에서 보이는 고수(顧繡)의 작풍(作風)을 통해, 조선 후기를 기해 조선에 유입된 고수가 왕실가에서 감상되면서 조선 후기 자수그림의 제작에 있어 어떠한 상관(相關)을 가지고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br* 조선 후기에는 사회, 경제, 문화, 규범에 있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중 청조(淸朝)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접할 수 있었던 신문물 가운데 중국의 여러 지방수들도 유입되었는데, 그중 고수는 일찍이 왕실 자수의 변화와 제작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18세기가 되면 자수된 생활용품이 사가, 민가에까지 확장되면서 호사(豪奢)취향으로 유행되었으며, 전문 제작가에 의해 수작(秀作)의 감상용 자수그림이 제작되면서 감상과 소장의 대상으로 수장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구복(求福)의 대상으로 신선도와 고사인물도를 시수한 감상용 자수그림 병풍이 제작되면서 한아(閒雅)와 숭사(崇奢)의 소재로 문예적 성장이 견인되었다. 이들 자수그림에서 보이는 고수와 상관된 특징으로는 첫째, 고수의 회수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리수나 자련수 기법으로 메운 점, 둘째, 고수처럼 공교한 표현의 장식수가 발달했다는 점, 셋째, 고수가 운간을 위해 사용한 푼사를 꼰사로 대체한 점, 넷째, 고수와 달리 모든 도상의 외곽선을 이음수로 둘러 정연함을 강조한 점, 다섯째, 간색(間色)보다는 보색(補色)의 대비를 이용한 점, 여섯째, 요지연도와 같은 자수신선도와 자수고사인물도가 유행한 점 등이다. 이 일련의 상관들은 중국보다 명성이 높았던 조선 자수의 정형적인 작풍으로 발전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