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대한제국기 十二章 도상의 계승과 확산
이화여자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7 · No. 293 · pp. 95-126
Full Text
Abstract
十二章은 古代 中國 天子의 禮服인 冕服에 시문되었던 12가지 圖像을 지칭한다. 일찍이 『尙書』 「益稷」편에서부터 그 기록이 나타나며, 後漢의 明帝가 십이장을 시문한 면복을 황제의 제례복으로 정식으로 제도화하면서, 12개의 章文은 天子에서 大夫까지 계급별로12, 9, 7, 5, 3, 1로 차등을 두어 사용되었으며 통치적 질서를 드러내는 표상이 되었다. 때문에 이 도상들은 秦漢 시기의 伏生을 선두로 여러 유학자들의 논의의 대상이 되어 고대 중국의 어떤 장식적 시각이미지보다 문헌과 도설로 그 형상과 의미에 대해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br* 이처럼 열두 개의 도상들은 황제의 예복에 결집되어 장식되었으나, 다른 의례적 기물의 도안이나 회화적 이미지 가운데에서도 단독 혹은 집합적으로 시문된 예들이 다수 발견된다. 실제 중국 고대의 禮書에서는 각 도상이 지닌 함의와 의례성에 대한 여러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상서』 「익직」편을 분석한 유학자들의 견해 중에도 십이장의 문양이 복식과 기물에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唐代 張彦遠의 『歷代名畵記』, 宋代 郭熙의 『林泉高致』같은 화론서에서는 십이장의 도상이 그림의 시원으로 언급하고 있다.*br* 우리나라는 특히 조선에 이르면 유교적 통치이념 아래 五禮에 의거한 禮治를 구현하고자 하였으며 冊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사여 받은 면복과 翟衣, 玉圭 등은 왕조의 정당성과 유교적 禮를 드러내는 시각적 표상물로 자리한다. 조선의 왕은 제후국으로서 九章服만을 입을 수 있었으나 여러 궁중의례장식에 십이장의 도상들이 사용된다.*br*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과 함께 황제가 된 고종은 十二章服을 입고 儀仗旗에 日月을 시문한다. 服飾과 儀物에 시문된 의례적이고 尙古的인 도상들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황제국으로 독립하였음을 천명하는 가장 복고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합병이 이루어지고 황제는 왕으로 격하되어 1945년까지 李王家로서 존재하지만 李王職에서 발행한 의궤와 經書의 도설, 현전하는 사진자료를 통해 왕실의례에 사용되었던 복식과 의물에 십이장의 도상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중국의 경우 청대에 들어 면복제도가 폐지되고 십이장의 도상들은 다양한 길상화가 진행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왕실의 전통성을 표상하는 상고적인 ‘古典象’으로 끝까지 존숭되었으며, 개별도상에 따라 부분적인 길상화가 이루지는 보수적인 특징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