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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倭館窯에서 제작된 ‘立鶴文(타치즈루) 양식’ 茶碗의 성립 과정

카타야마 마비

東京藝術大學

Published: January 2021 · No. 311 · pp. 15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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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임란 이후 현재 부산에 설치된 왜관 안에 있었던 왜관요를 대표하는 ‘왜관요 입학문 양식’ 다완을 중심으로 제작 연대, 다완의 형태와 문양도상의 성립 배경에 대하여 도자자료 뿐 아니라 역사적 문헌사료와 회화자료까지 활용가능한 자료들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검토함으로써 왜관요의 성격에 대해 규명해보고자 하였다.*br* ‘왜관요 입학문 양식’ 다완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초량왜관 선창지 출토 유물이나 왜관요 출토편, 문헌에 나타난 근거들을 종합해볼 때, 두모포왜관에서 초량왜관 시기까지 이어지는 긴 기간에 걸쳐 제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통형잔과 제기의 굽 모양을 본뜬 할굽이 조합된 형태는 왜관요가 성립되었을 당시에 장군가에서 선호되고 있었던 고려 말기의 통형잔과 조선 전기 연질백자제기의 형태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문양에 대해서는 고려 후기의 상감청자에 나타난 간략한 새 문양과 기존에 일본에서 오랫동안 장수의 상징으로 선호되어 왔던 학의 이미지, 남송의 화가 牧谿의 회화 속에서 차용된 학의 도상,그리고 거기에서 모사화 등으로 다시 파생된 狩野派의 학의 도상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와 같이 ’왜관요 입학문 양식’은 고려청자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왜관요가 생겼을 당시 일본 장군가에서 선호되고 권위의 상징이었던 고려 후기 통형잔, 상감청자의 학문, 조선 연질백자 제기, 장수의 상징으로 기존에 선호되던 학의 이미지, 그리고 牧谿에서 파생된 학의 이미지 등 여러 이미지가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속에서 형성된 고려, 조선 도자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선의 지방 사기장이 제작한 것이므로 ‘왜관요 입학문양식’ 다완들은 조선 도자의 일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왜관요 입학문 양식’ 다완은 한국 도자는 물론 일본 도자의 양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가 엇갈리는 주변성(周邊性)을 지니는 것이다.
Keywords: ‘입학문 양식’(Tachizuruthe decoration of standing cranes)왜관요(Waeguan kilnsthe Japan House Kilns)다완(tea bowl)주변성(margi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