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조선말기 서구인이 수집한 민화와 그 특징
한국학중앙연구원
Published: January 2018 · No. 300 · pp. 105-136
Full Text
Abstract
19세기 초 신흥부유층의 부상과 더불어 민화의 소비계층이 늘어나면서 종로와 광통교 일대의 시전에 그림을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섰다. 19세기 중엽의 『한양가』에는 당시 시전의 그림 가게에 나온 다양한 민화의 화제들이 소개되어 있다. 민화의 수요와 공급이 증가하면서 거래가 활발해진 결과이다. 오늘날 19세기로 편년되는 수많은 민화가 전하지만, 당시 시전에 나온 민화가 어떤 그림인지 확증할 수 있는 자료는 접하기 어렵다.*br* 19세기 후반기에는 민족학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조선에 온 서구인들이 다량의 민화를 수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1885년에 처음으로 민화를 수집한 미국인 밥티스 버나도(J. B Bernadou), 1888년에 조선에 온 프랑스인 샤를 바라(Charies Varat), 20세기 초에 민화를 수집한 이탈리아인 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 등이다. 이들은 민화를 서민층의 생활풍속과 관련된 자료로 보고서 수집했다. 그들이 수집한 민화는 이후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과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으로 각각 들어갔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지금 그 수집품들은 19세기말 서울의 시전에 나왔던 민화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실증자료이다.*br* 본 논문에서는 당시 서양인들이 수집한 민화 가운데 비교의 기준이 명확한 주요 그림만을 선별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까치호랑이>는 시전에 나온 기록은 없지만, 버나도와 바라의 수집품을 통해 활발하게 유통된 민화임을 알 수 있었다. 까치호랑이의 도상은 화원화가들의 양식을 민간 화가가 모방하면서 민화로 변용시킨 사례이다. <봉황도>와 <화조도>도 궁중양식에 근거하여 민간 화가들이 민화풍으로 소화해 낸 그림이다. 계견사호는 실내의 벽장 등을 장식하는 용도의 그림으로 『한양가』에도 실려 있다. 책거리는 상류층에서 선호했지만, 동시에 소박한 형태의 책거리가 시전에서 팔리고 있었다. 이와 같이 시전에 나온 민화는 화원양식을 모방하거나 따른 사례가 많았다. 세련된 화원들의 그림을 베끼거나 재구성하여 그린 사례가 대부분인데 이 그림들을 통해 민화의 저변확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br* 서양인들이 수집한 민화의 장황형식과 그에 따른 소비 공간도 함께 살펴보았다. 종축형식의 그림은 주로 집안의 방 출입문에 붙여서 활용하였고, 정방형의 계견사호 등은 벽장문이나 창문 안쪽에 붙여서 장식하였다. 횡축형은 집안의 방 출입문 위쪽 상인방에 붙이는 용도였고, 일정한 크기에 맞춰서 그린 것이다. 이렇게 민화를 집안에 붙이고 걸어둔 곳은 곧 민화의 소비 공간이 되는데, 20세기 초에 촬영한 사진과 그림 속에서 그러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 자료는 실제 생활공간 속에서 민화가 소비되는 양상을 어떤 기록보다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준다. 버나도 등이 수집한 약130년 전의 민화는 우리 민화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의 출발점이며, 이를 통해 기준작에 의한 민화 연구의 필요성과 조선말기 민화의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연구는 궁중회화와 민화의 관계를 정리하여 19세기에 다양하게 전개된 민화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