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고려시대 銙帶 연구
한국문물연구원
Published: January 2018 · No. 297 · pp. 119-145
Full Text
Abstract
고려시대 과대는 총 223점으로 분묘출토 107점 중 완성품으로 추정되는 것은 3건 36점이다. 전세품의 과대는 113점이 확인되며, 완성품으로 추정되는 것은 6건 64점이다. 문양은 발굴출토품에서 모란문과 포류수금문이 다수 확인되며, 전세품의 과대에는 여지문, 기린문, 보상화문 등 더욱 다양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br* 고려전기는 고려건국부터 11세기로, 대표적인 전세품 사례는 안동태사묘에 소장되어 있는 2건의 여지문 과대가 있다. 분묘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진안 수천리 출토 과대와 포항 호동 유적 출토 과대이다. 과대의 형식은 통일신라에 유행했던 첩섭대형 과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구 형태는 c자형으로 대부분의 교구판에 문양이 새겨지지 않으나 현릉의 사례에서 모란문 교구판이 확인되었다.*br* 고려중기는 12세기부터 13세기 중반으로 대표적인 전세품 사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앵무여지문 과대이며, 분묘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서천 추동리 유적 출토 과대와 연기 봉기리 유적 출토 과대가 있다. 교구는 전기의 ‘C’자형 교구를 쓰기도 하지만 ‘ㄷ’자형 교구가 동시에 나타나며, 교구에 어자문을 새긴 것이 확인된다. 교구판 앞면에는 모란문을, 뒷면에는 포류수금문이 새겨진다. 과판이나 교구판에 문양이 새겨지기 때문에 과판에 있는 장방형의 구멍의 용도가 적어져 흔적기관으로만 남게 된다. 또한 동일한 문양의 과판을 생산함으로써 통일된 문양과 제작기법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br* 고려후기는 13세기 중반부터 고려 멸망까지로 대표적인 전세품 사례는 안동태사묘에 소장하고 있는 모란문과대와 동철여지문 과대이다. 분묘출토 대표적인 사례는 창녕 초곡리 출토 과대와 단양 현곡리 출토 과대이다. 교구는 ‘ㄷ’자형으로 교구 옆면에 당초문을 새긴다. 교구판은 중기부터 이어져온 양식인 모란문과 포류수금문을 양면에 새기며, 모란문 대신 연화문을 새긴 교구판도 확인된다. 또한 과판과 교구판에 문양이 새겨지는 것이 일반화 되어 과판에 장방형의 구멍이 사라진다.*br* 과대는 중국의 제작기법과 문양의 유행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고려에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고려 중기부터 후기까지의 교구판은 앞면에 모란문을 새기고 뒷면에는 포류수금문을 새기는데 이는 고려만의 특징이다. 또한 불교공예에서 주로 등장하는 문양인 포류수금문과 기린문, 나한문, 연화문 등 다양한 길상문이 과대에 새겨 지는 것은 당시의 문양의 유행이 과대에도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