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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高麗前期 新樣式 石佛의 展開와 造成背景

陳政煥

國立中央博物館

Published: January 2015 · No. 287 · pp.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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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에서는 고려전기 신양식 석불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립되었으며 정착되고 변용되었는가와 함께 신양식 석불의 조성배경까지 종합적으로 다루어 보았다. 이를 위해 우선 후삼국기 괴체적인 조형미의 완성이자 고려전기 신양식 석불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개태사 석불입상을 살펴보았으며, 그 다음으로 면류관형 보관을 착용한 석불입상을 중심으로 신양식 석불이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검토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신양식 석불의 편년과 조성배경에 대해서도 규명해 보았다.*br* 후삼국기 가운데 왕건집권기에 조성된 경기지역 석불의 영향을 받아 괴체적 석주형 조형미를 완성시킨 논산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의 조형성은 10세기 중엽에 조성된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충주 원평리 석불입상을 비롯한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계승한 불상에도 영향을 주어, 장대성과 괴체감이 극대화된 시대양식을 형성하였다. 10세기 말 이후에는 포천 구읍리 석조보살입상처럼 전통양식과 절충되거나,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처럼 외래(요)의 영향을 받기도 하며, 11세기 중엽 이후에는 발원계층의 확대와 장인 수급의 문제로 당진 안국사지 석불입상이나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처럼 형식화 · 단순화되면서 점차 토속성이 강한 불상으로 변모한다.*br* 고려전기 신양식 석불이 장대함과 괴체감이 강조된 석주형의 조형미를 보이는 만큼 조성배경을 순수하게 불교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 가령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조성한 논산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은 분명히 새로운 통일왕조 고려의 기상을 대내외에 드러내고자 했던 불상이다. 광종대에 조성된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과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면류관을 착용한 것은 광종의 황제국 선포와 관련이 깊다. 11세기 2/4분기에 조성된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에서는 당시 요(거란)와의 교류와 고려 불교계를 주도한 법상종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포천 구읍리 석조보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불입상,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은 국가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염원했던 거군현적 향도결사의 발원으로 조성된 불상이다.*br* 이처럼 불교의 예배상이 다양한 정치적 含意를 내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고려시대 國家裨補思想에 의해 불교미술품이 국가비보를 위한 하나의 조형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Keywords: 석불(石佛stone Buddha)고려전기(高麗前期early Goryeo period)신양식(新樣式new style)면류관(冕旒冠crown)왕건(王建Wanggeon)광종(光宗Gwangjong)현종(顯宗Hyeonj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