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朝鮮 15世紀 塔內 奉安 佛像의 考察
불교중앙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4 · No. 283 · 284 · pp. 5-30
Full Text
Abstract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조성된 탑 안에서 많은 불상들이 발견되었다. 불상을 봉안한 탑의 사례는 약 40여 기이며, 불상은 100여 점에 달할 정도로 많다. 탑 안에서 불상이 발견된 사례는 그 전통이 매우 오래되며, 사례마다 다양한 용도로 매납되었다. 이 100여 점에 달하는 불상 가운에 30구에 달하는 불상들은 모두 15세기에 탑에 봉안된 것이다. 이들 불상들은 작품의 완성도도 높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기년작이며, 무엇보다 봉안처가 확실하므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br* 조선 15세기에 이렇게 많은 불상을 탑에 봉안하는 이유는 선종계열의 경전과 당시의 의례문 등 문헌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금강경오가해』나 『선문염송설화』의 내용에 근거하여 탑묘에서 묘라는 것이 그동안 알려진 무덤의 의미가 아닌 ‘貌’ 즉 모습이며, 이는 부처의 형상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탑 안에 부처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불교의례를 통해 탑에 불상을 봉안하는 것이 유행하여 실생활에서 널리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어느 시기부터 이렇게 현실에서 인식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기반으로 의례에까지 널리 보급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 시기에도 탑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한 예도 있지만 불상이 이를 대체하는 양상이 큰 흐름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br* 조선 15세기에 조성된 30구의 탑에 봉안된 불상들은 대부분 아미타신앙에 의거하여 수복장생과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봉안하였고, 불상조성에 승속과 남녀, 그리고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조선 15세기 탑에 봉안된 불상들은 규모가 작은 금동불이지만 당시대 복장의식을 따르면서도 작은 소금동불에 맞게 취사, 선택하여 일정한 복장을 하였다. 그리고 불복장에 사리를 봉안하고 점안하였다. 조선 15세기는 불상의 불복장의례가 보편화되었으므로 불복장에 사리가 모셔지면서 불상자체가 신앙의 완결성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탑에 불상을 봉안하는 것은 사리 봉안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불상봉안에 더 큰 의미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br* 불복장형식으로 사리를 탑에 안치한 예는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불탑에 대한 신앙이 약화되어 모든 공양이 금당안의 불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시대의 신앙적 특징과도 연결된다. 즉, 조선 15세기에 탑에 봉안된 불상의 의미는 전 시대와 다른 특징을 갖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