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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1493年 水鐘寺 석탑 봉안 왕실발원 불상군 연구

박아연

국립중앙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1 · No. 269 · pp.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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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493년 수종사 석탑 봉안 불상군은 기년명이 있고 발원자가 확실한 왕실발원 불상으로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대표작이다 특히 여러 명의 왕실여성 발원자와 불상의 중수, 탑봉안, 불상의 구성 등에서 특이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br* 수종사는 1439년에 태종의 딸 정혜옹주 사리탑을 세운 것을 계기로 1459년 세조에 의해 중창되면서 사세가 커지고 영험있는 사찰로 성장하였다. 특히 성종대에는 대비의 비호아래 있던 왕실사찰로, 많은 여승과 사족의 여성들이 출입했다. 이는 성종의 후궁들이 불상을 중수하여 수종사 석탑에 불상군을 봉안하게 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br* 1493년 봉안 수종사 불상군은 금동석가불좌상 바닥의 명문과 복장발원문을 통해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가 시주하여 조성되었고, 1493년에 성종의 후궁 숙용 홍씨, 숙용 정씨, 숙원 김씨가 왕실의 번영 및 왕실일가와 자녀의 수복장수를 기원하면서 불상을 중수하여 석탑의 초층 탑신석에 봉안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br* 금동석가불좌상은 명빈 김씨의 소지불이었다가 명빈의 사후 성종의 후궁들이 1493년에 중수하면서 석탑에 봉안된 것으로 파악된다. 불상의 조성과 중수시기가 15세기 후반으로 크게 차이나지 않고, 석탑의 2?3층 옥개석에 ‘弘治六年’(1493년)의 묵서가 있었던 점 등은 탑 조성시 불상을 봉안했음을 입증해준다.*br* 한편, 발원자들은 불사 및 인척관계를 통해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다. 태종대의 왕실 여성들이 수종사와의 인연으로 명빈 김씨가 시주한 불상이 수종사에 모셔지게 되었다 불상을 중수한 숙용홍씨와 정씨, 숙원 김씨는 1490년 해인사 중창불사에 시주자로 참여하였을 뿐 만 아니라 자식들의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긴밀한 관계와 불사의 목적이 동일하였기에 함께 불사를 행하였을 것이다.*br* 금동불감에 안치된 금동불상 3구는 석가불좌상, 반가사유보살상 지장보살좌상으로 일반적인 삼존형식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기와 특징이 다르다. 이는 처음부터 삼존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석가불좌상이 안치된 불감에 이후 반가사유보살상과 지장보살좌상을 넣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목조불감의 목조상 3구는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 천왕상으로 구성형식과 크기의 차이가 있어 독특하다 이는 현세이익과 내세의 복을 기원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자했던 것으로 판단된다.*br* 1493년 석탑 봉안 수종사 불상군은 15세기 불?보살상의 특징이 반영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려 후기 양식을 계승하면서 중국 명대 불상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조선 전기의 새로운 양식이 동시에 반영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불상양식이 정착되어 가는 조선 전기 불교미술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자료가 된다.
Keywords: 수종사(Sujongsa Temple)탑 봉안(Enshrined in a pagoda)불상(Buddhist Statue)조선 전기(Early Joseon)왕실발원(Commissioned by the royal family)왕실 여성(Female members of the royal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