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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조선후기 <王會圖> 屛風의 제작과 의미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Published: January 2013 · No. 277 · pp. 1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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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왕회’의 연원은 주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왕회도’가 처음 그려진 것은 唐代이다. 조선에서 왕회는 국초부터 왕실과 문인관료들에게 알려져 있던 개념이다. 조선에서 왕회는 주대 천하가 태평하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며 제후와 사이가 화친한 이상적인 정치질서로 인식되었다. 왕회도는 주로 중국에 사행하는 사신들을 격려하는 글 속에서 언급되었을 뿐 조선전반기에는 실질적인 제작에 대한 필요성이나 수요는 없었다.*br* 조선시대에 왕회도의 제작은 18세기 말 정조대에 이르러 궁중회화의 한가지로 출발하였으며 순조년간으로 계승되었다. 청나라에 대한 의식이 변화, 건륭년간 북경을 왕래한 사신들의 이국 문물에 대한 경험, <만국래조도>의 실견이나 <황청직공도>의 전래 등이 19세기 왕회도 제작에 자극제가 되었다. 조선시대 <왕회도> 병풍의 제작은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지만 현전하는 왕회도와 같은 내용과 형식의 병풍은 순조년간 무렵에 확립된 것이다.*br* 조선시대 <왕회도> 병풍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태평성세이다. 왕회라는 중국의 고사를 그린 것이지만 애당초 조선의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었으므로 이상적인 정치공간의 표상이나 태평성세라는 길상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다. 왕회도 병풍에 그려진 세계는 중국과 한국의 현실이 섞여 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상의 현실에 가깝다. <왕회도> 병풍 배경이 이상적 정치 공간의 설정이라는 측면에서는 태평한 시절 만민의 이상적 생활공간이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풍속화 <태평성시도>의 경우와 잘 비교된다. <태평성시도>에도 중국과 조선의 현실이 공존하며 이상적인 도시의 구현으로서 다중적 함의를 내포한 그림이기 때문이다.*br* 또한 태평성세의 길상성은 <요지연도>와도 상통한다. 서왕모와 주목왕의 연회에 많은 불보살과 신선이 축수를 하러 사방에서 몰려오는 내용의 <요지연도>와 <왕회도> 병풍은 여러 도상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이미 주목되었다. <요지연도>가 신선세계의 최고의 권위에 대한 알현 광경이라면 <왕회도>는 이상적인 정치세계의 최고 권위에 대한 공경의 표시라는 점에서 같다. 모두 태평한 세상에 대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br* 한편 왕회도 병풍은 궁중과 민간에서 모두 사용될 수 있었던 모란병, 곽분양행락도, 요지연도, 십장생도 같은 장식 병풍과 달리 사용의 범위가 궁중에 국한되었지만 궁중회화의 다양성을 확대하였다는 측면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Keywords: 왕회도(王會圖Wanghoedo(Painting of Tribute Mission to the Son of Heaven))왕회(王會Wanghoe(Princely Gathering))궁중장식화(宮中裝飾畵court decorative painting)궁중회화(宮中繪畵court painting)계병(稧屛Gyebyeong(Folding Screen with Illustrated State Affairs))조공도(朝貢圖Jogongdo(Painting of Tributary Envoys))직공도(職貢圖Jikgongdo(Painting of Tributes))요지연도(瑤池宴圖Yojiyeondo(Immortals’s Feast on Yo-ji Pond))규장각 차비대령화원(奎章閣 差備待令畵員Gyujanggak Chabidaeryeong Court Pa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