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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A Study on Official Kiln Celadon (官窯 靑磁) of the Joseon Dynasty

김영미

경기도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0 · No. 266 · pp. 9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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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 지역 가마에서 제작된 청자는 백자의 태토에 청자의 유약을 입힌‘白胎靑釉磁’이다. 그릇의 종류는 대접ㆍ접시ㆍ잔ㆍ호ㆍ합ㆍ병 등이 있으며, 형태는 백자와 유사하다. 그 외에 소량의 대야[盤]ㆍ향로ㆍ의자[墩]ㆍ화분ㆍ받침 등이 제작되었으며 고려시대 청자의 장식기법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청자와 관련된 기록으로『經國大典註解』와『光海君日記』에서 ‘御膳用은 白磁, 東宮은 靑器, 禮賓用은 彩文器를 사용한다’고 하여 청자가 동궁의 기명임을 알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조선시대 청자가 동궁 기명으로 채택된 역사적 배경과 시기별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br* 조선시대 청자가 동궁의 기명으로 선택된 시기는 世祖시기인 약 1460년경으로 추정되며 왕실의 위계질서를 위해 어기인 백자와 구분하여 동궁의 기명으로 청자를 정하게 되었다. 청색의 그릇이 사용된 이유는 조선 왕조의 이념인 儒敎의 陰陽五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왕이 될 인물인 세자는 새벽을 상징하며 東과 靑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동궁의 기명 선택에서도 자연스럽게 靑色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br* 조선시대 청자 그릇의 형태와 유색의 변화에 따라 시기별 특징을 이루는데, 성립기ㆍ전성기ㆍ쇠퇴기 세 단계의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성립기(1420-1460년경)는 백태청유자가 기술적으로 도입되는 시기이다. 두텁고 짙은 녹색의 유약이 시유된 대접과 접시가 생산된다. 전성기(1460-1592년경)는 얇고 고루 시유된 하늘색과 연한 녹색의 유조가 최고 절정을 이루며, 다양한 기종의 청자가제작된다. 그 외에 고려의 장식기법을 이용한 화려한 향로, 의자, 대야, 화분 등도 제작된다. 쇠퇴기(1592-1659년경)는 그릇의 종류가 줄어들고 청자의 빛깔이 황색기를 띠게 된다. 청자의 소멸 이유는 1616년 『光海君日記』의 내용으로 알 수 있는데, 신분에 따른 기명 사용의 구분이 흐트러져 어기인 청자의 사용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br* 경기도 廣州에서 제작된 조선시대 靑磁는 새로운 기술과 儒敎 文化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東宮의 器皿이며 도자문화의 한 조류로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