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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The Character of the Gwangju Usanri Kiln Sites as Seen Through Inscription Materials

김봉준

경기도자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0 · No. 266 · pp. 12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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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廣州牛山里는『世宗實錄』地理志의 下品磁器所인 所山으로 기록된 곳으로 다양한 명문자료들이 출토되고 있어 15세기 조선 백자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br* 조선시대 자기는 貢納制度下에 貢物과 進上의 형태로 수취되었는데, 貢物을 받는 中央各司에는 도자기의 官司名으로 등장하는 長興庫와 禮賓寺 및 內資寺와 內贍寺등 內用과 國用을 담당하는兼供衙門과 內用을 전담하는 供上衙門이 포함되어 있었다. 貢物로 납입되는 도자기물은 1417년 이전 司饔房에 납입한 후, 長興庫에서 각 所處로 봉납하였는데, 1417년 이후 구체적인 司號名을 새겨각 司별로 貢案에 의거하여 分定上納케 하였다. 進上의 경우 각 道관찰사와 牧使등 지방관 등이行幸과 講武시 사용되는 그릇을 공급하거나, 工曹에 의해 필요한 기물을 사전에 제작하였다.*br* 백자의 수취형태는 1466년 6월 白磁가 貢物에서 제외되고, 백자 사용과 백토산지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백자수취 체제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적어도 司饔房이 司饔院으로 개칭되는 1467년 4월 이전에는 官窯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內用’ 및 ‘用’, ‘內’, ‘司’銘백자들이 출토되고 있는 廣州牛山里I窯址群은 官司名이 시문되는 1417년 이전부터 요업활동을 이루어진 곳으로 干支銘靑磁에서 보이는 印刻技法과 黑象嵌 및 陰刻技法으로 器物의 外面과 內底面에 銘文을 시문하였다. 『世宗實錄』 「地理志」에 기록된 下品磁器所인 所山이 현재의 冠山지역으로 추론되므로, Ⅰ窯址群은 대략 『世宗實錄』 「地理志」의 조사기간의 하한인 1430년 무렵까지요업활동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Ⅱ窯址群은 1430년부터 官窯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운영된 가마들로 官司名 또는 所用處名으로 보이는 ‘王’, ‘殿’, ‘中’, ‘仁’과 숫자 명문, ‘?’, ‘貴’ 등 다양한 명문 자료들이 출토되고 있다. ‘王’, ‘中’, ‘殿’ 銘磁器와 數字銘文磁器는 비교적 良質인 반면, ‘?’, ‘貴’ 등의 銘文白磁는 粗質로 질적 차이를 보인다. ‘王’, ‘殿’, ‘中’, ‘仁’, ‘?’, ‘貴’ 등은 모두 굽안 바닥에 명문을 陰刻하였는데, 이는 官窯설치 이후 ‘天地玄黃’, ‘左右’+干支銘으로 이어지는 朝鮮官窯의 銘文 시문방법의 始原을 보여주는 것이다. 牛山里9호 요지를 중심으로 하는 Ⅲ窯址群은 1466년 6월 백자가 貢物에서 제외되고, 1467년 4월 司饔房이 司饔院으로 개칭되어 官窯가 설치된 이후 운영된 가마들인데, 구체적인 官司名이 없으며, ‘天ㆍ地ㆍ玄ㆍ黃’과 기물의 體樣인 ‘見樣’ 등의 銘文이 등장하고 있어 관영사기제조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