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조선후기 은거 이미지의 전개와 변용

홍혜림

고려대학교

발행: 2016년 1월 · 290·291호 · pp. 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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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깊은 산, 한쪽으로 치우쳐진 구도에 자리한 외딴 집, 우거진 나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림은 은거 이미지를 그린 관념산수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은거 이미지는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은거지가 시대에 따라 대체로 山林에서 점차 城市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18세기에는 주변 경관은 유지하되 주거지에 접근하여 원림의 조경과 가옥의 내부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증가한다. 이는 서재와 정원 조성에 심혈을 기울인 당시 사회 풍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곳에 수집된 서화고동을 완상하며 유유자적했던 그들의 삶을 반영하듯 조선 중기까지 생략되었던 서재 안의 고동기물, 문방구류도 형상화된 것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은거지 시의도인 <山靜日長圖>가 다수 제작된 배경에는 이전과는 달라진 이상적 은거지 인식이 기저에 있었다.*br* <산정일장도>의 제재가 된 나대경의 「산정일장편」은 허균에 의해 주목되었다. <산정일장도>는 《천고최성첩》에 실린 방우도 형식으로 전해졌으며, 나대경의 原文 내용의 특정 구절을 살려 그렸던 정선의 작업 이후, 6폭이나 8폭의 여러 장면으로 나눠 그린 <산정일장도>가 심사정, 김희성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하여 이인문, 오순, 이재관 등이 그린 8폭 병풍으로 발전해나갔다. 이렇게 <산정일장도>가 여덟 장면으로 성립되기까지는 중국에서 들어온 範本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이후에는 조선의 심미에 맞게 그려지고 애호된 경향을 보인다. 조선의 <산정일장도>는 단폭보다 주로 「산정일장편」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에 해당하는 모티프를 활용하여 그리는 형식을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각 폭은 은퇴한 선비가 자연에 은거하며 午睡, 飮茶, 讀書, 散步, 作書 등을 즐기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크게 머무는 곳을 그린 居의 장면과 산책과 귀가 등의 行의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br* 이러한 <산정일장도>를 구성하는 방우 형식이나, 화면 좌측 혹은 우측에 산을 등지고 배치된 가옥의 모습은 기존에도 있던 도상들로서 각각은 이미 은거의 주제를 위해 사용되어졌던 것들이었다. 따라서 화가들은 「산정일장편」에 나오는 은일자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 도상들을 활용했을 것이며, 이것이 점차 <산정일장도>를 나타내는 특징적인 도상으로 정착되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 각각의 도상들은 그 의미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한때 물질을 초월한 정신적 세계를 상징하던 깊은 산중의 은거지와 그 세부 모티프들은 이상적으로 꾸며진 세속의 은거지를 나타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산정일장도>는 이상적인 은거지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모티프들로 이루어진 그림들이 함께 감상되는, 조선후기 은거 이미지의 총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키워드: 은거지 시의도(landscape of reclusion after a poem)시의도(paintings after poems)은거지(dwelling in reclusion)성시산림(walled citiesmountains and forests)산정일장도(Long Days in the Quiet Mounta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