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箕埜 李昉運의 《癸未年韓中山水圖帖》 연구
명지대학교
발행: 2017년 1월 · 294호 · pp. 41-70
본문 보기
초록
본 논고는 조선후기에 활동한 화가인 箕埜 李昉運(1761-1823 以後)이 1823년, 그의 나이 63세에 제작한 《癸未年韓中山水圖帖》 을 번역하고 소개하였다. 기야 이방운은 1761년에 태어나 아직 정확한 몰년이 밝혀지지 않았고, 많은 작품이 남아 있는 가운데 생애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이방운의 작품이 대략 230여 점에 이르고, 각각의 작품들은 장르의 경계 없이 다양하게 파악된다. 특히 그림뿐 아니라 글씨, 문장력까지 두루 능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는 이방운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논고에서 주지하는 바는 이 첩의 연대를 통해 몰년의 하한을 재상정해보고, 노년의 기량이 농축된 이 첩의 서화(書畵)를 기준 삼아 이방운의 회화세계를 넓히는데 목적을 두었다.*br* 《계미년 한중 산수도》 8폭 서화첩은 모두 13폭으로 중국의 명승도 7폭과 우리나라 금강산도 1폭, 그림에 붙인 시문 5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디 이 첩은 그림과 함께 시문이 위·아래에 나란히 표구된 병풍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 시문 3폭이 유실된 채 13폭이 帖으로 개장改裝되어 있다. 이 첩의 중요한 지점은 그동안 ‘1815년 이후’로 추정했던 몰년을 적어도 63세까지 높여 본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고미술 감정안으로 이름이 높았던 松隱 李秉直(1896-1973)이 소장하였다는 題簽이 있음으로 해서 작품의 내력을 확실히 한다.*br* 《계미년한중산수도첩》은 조선후기 문인들이 선호하던 주제인 망천도, 서호도, 무이구곡도 등 그림과 그에 상응하는 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17세기에 들어서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 명승유람과 遊記文學, 인문지리서 편찬이 성행하였고 중국의 산수화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양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방운의 경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의 명승도도 많이 남겼다. 특히 이 첩은 중국에서 유입된 화본을 따르거나, 선대화가의 화풍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고, 노년의 능숙한 필치를 한껏 발휘하여 이방운의 후기작품의 기준으로 삼는데 이의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 첩의 발굴을 기회로 이방운의 화풍의 변화도 간단히 시도해 볼 수 있다.*br* 후반기에 뚜렷이 나타나는 이방운의 화풍은 대상을 간략히 하고, 맑은 담채와 짧고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윤곽선등의 특징은 이제까지 이방운이 단순히 겸재, 현재, 표암의 영향하에 있던 화가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확고히 한 화가로 재평가 해 볼 필요가 있다.*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