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조선시대 백자 ‘祭’명 접시의 변천: 관요 유적 출토품을 중심으로
경기도자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23 · No. 319 · pp. 45-78
Full Text
Abstract
조선 관요에서 제작된 백자 ‘祭·’ ‘壽·’ ‘福’명 접시는 제작되는 시기에 따라 글자를 쓰는 시점과 명문을 쓰는 안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특히 금사리 관요가 운영되는 18세기 2/4분기부터 제작량이 급증하고 양식상의 변화 역시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br* 첫째, 접시에 ‘祭’명을 쓰는 시점은 1560년대 이전까지는 소비처에서 정각·묵서로 용도를 표기하다가 1560년대 이후부터 관요에서 제기접시를 제작할 때 제례용임을 의미하는 ‘祭’명을 표기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하지만, ‘壽·’ ‘福’명은 관요가 설치된 이후부터 관요가 민영화되는 시기까지 접시를 제작할 때 장수와 복을 의미하는 ‘壽’· ‘福’명을 표기하는 것으로 확인됨으로서 글자는 쓰는 시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br* 둘째, ‘祭’ ·‘壽’· ‘福’명은 사용되는 안료의 종류에 따라 접시에 쓰는 방식이나 위치에 차이가 있다. 특히, 17세기 이후부터는 ‘祭·’ ‘壽·’ ‘福’명을 철화와 청화안료로만 표기하였다, 철화안료를 사용한 것은 원권문이 없고 글자만 단독으로 표기하였으며 굽 안 바닥이나 내저면에 위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청화안료를 사용한 것은 원권문 안에 ‘祭’· ‘壽’· ‘福’명을 표기하였으며 내저면에 위치한다.*br* 셋째, ‘祭·’ ‘壽·’ ‘福’명 접시의 기형상 변화는 금사리와 분원리 관요에서 가장 두르러지게 나타난다. 금사리 관요의 가장 큰 특징은 굽이 높고, 굽과 동체부까지 각이 진 접시를 제작한 점이다. 그러나 굽의 형태가 각 형인 ‘祭’명 접시는 제작하지 않고, 굽과 동체부가 각이 진 ‘福’명 접시는 제작하였다. 반면 분원리 관요는 금사리 관요에서 제작된 동일한 형태의 ‘祭’· ‘福’명 접시뿐 아니라 굽의 형태가 원형이고, 굽의 높이가 매우 높은 ‘祭’ 명 접시도 제작한 것으로 밝혀짐으로서 ‘祭’명 접시의 변화 양상이 일정부분 밝혀졌다. 특히, 금사리와 분원리 관요가 굽과 동체부가 각이 진 ‘壽’명 접시를 제작하지 않은 것이 밝혀진 것도 성과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