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조선후기 청화백자 병화(瓶花)도상으로 본 명대의 영향
고려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20 · No. 308 · pp. 7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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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조선 청화백자에 등장한 병화(瓶花)도상은 화병이나 화분에 식물을 꽂은 도상을 가리킨다. 병화문화는 명대 중기 이후 문인들의 『준생팔전(遵生八牋)』(1591), 『병화보(瓶花谱)』(1595), 『병사(瓶史)』(1599), 『장물지(长物志)』(1621) 등 서적과 〈병화도(瓶花圖)〉 회화를 비롯해 『당시화보(唐詩畫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畫譜)』 등 판화로 확대되었다. 특히 병화의 품등을 청동기와 가요자기 등의 고동 화병으로 구분 짓는 행위는 문인들의 고동기에 대한 인식 욕구를 자극했다. 이러한 병화도상이 시문된 중국 도자는 숙신공주(淑愼公主, 1635~1637)묘와 종로 청진 12-16지구에서 발굴되었으며 허균은『한정록(閑情錄)』에서 명대 문인 원굉도(袁宏道)의 『병사(瓶史)』를 부록으로 실어 병화문화를 전파했다.*br* 조선의 청화백자에서도 병화도상은 청동기의 돌기와 유두문(乳頭文)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요자기의 빙렬문양도 확인된다. 특히 중국 청화백자에서는 보이지 않는 청동기 돌기와 가요자기의 빙렬문을 결합한 병화도상도 등장한다. 또한 병화의 구체적 품등에 대한 기록과 삽화가 등장하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와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병화문화에 대한 이해가 확인되며 19세기 이유원은 「화사(花史)」에서 병화문화를 시로 각색하였다.*br* 이렇듯 도자에 그려진 병화도상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문인들의 병화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조선에서도 허균이나 김홍도, 이유원 같은 문인들은 화병을 선별하는 병화문화를 향유했다. 그 외에도 조선 청화백자의 문양을 통해 병화문화의 저변 확대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병화도상은 조선문화의 일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주요한 매개체로서 도자의 문양이 문화의 전달자로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