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rticles Abstract
Research Article

18세기 조선 유입 清代 琺瑯瓷器 연구

김은경

고려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7 · No. 293 · pp. 65-93
Full Text

Abstract

1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조선은 청나라의 관계가 안정되면서 여러 방면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다. 특히 이 시기 북학파에 의해 청나라를 인정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던 바램은 조선 사회의 도자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청대 도자 공예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성장한 소위 법랑채라 불리는 법랑자기는 청 왕조의 적극적 주도 하에 생산 발전된 주력 품목이었다. 이 법랑자기는 18세기 조선에 처음 소개되는 시기로 현재 일부 출토품과 전세품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br* 본 연구는 분명 일정 수량의 법랑자기가 수입되어 소비되었을 조선의 상황에 주목하였으며, 특히 조선에 막 소개되기 시작한 18세기의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였다. 18세기 조선에 유입된 법랑자기는 문헌을 통해 건륭년간(1723-1795) 황제에 의해 「洋磁琺瑯」이 3차례 하사된 기록이 있으며, 최근 경기도 남양주에서 발견된 사도세자의 누이인 화협옹주(1731-1752)묘 및 화유옹주(1741-1777)묘에서도 각 1점씩 18세기*br*중·후반경에 제작된 법랑자기가 출토된 바 있다. 문헌기록 속의 洋磁琺瑯은 오늘날의 양채자기로 청 황실어용자기였다. 그러나 옹주묘에서 출토된 법랑자기들은 민가에서 제작된 민요 법랑자기로 추정되며, 그 유입과정 역시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18세기 유물인 옹주묘 출토품을 통해 당시 조선으로의 유입된 과정을 살펴보았다.*br* 황실 공예였던 법랑자기는 18세기 중반 이후 상류층을 위한 고급상품에서 일반상품으로 사회적 위치가 전환되었다. 그 결과 민요에서 제작된 법랑자기는 중국 내수시장을 위해 경덕진에서 운하를 통해 중국시장의 핵심인 북경이나 통주 등지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연경사행을 통해 북경이나 통주를 오갈 수 있었던 창성위 황인점 같은 특권층인 사신들은 제한적이나마 최고급 상품을 접하여 조선에 유입시킴으로서 18세기 후기에 시작된 세계적인 조류에 조선이 합류하게 되는 계기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Keywords: 18세기(eighteenth century)법랑자기(falancai porcelain)양채(yangcai)분채(fencai)정조(Jeongjo)화협옹주(Princess Hwahyeop)화유옹주(Princess Hwayu)황인점청나라(Qing Dynasty)옹정제(Yongzheng Emperor)건륭제(Qianlong Emperor)청궁(The Qing Court)조판처(Palace Workshops)경덕진(Jingdezhen)어요창(The Imperial Kiln)조.청 도자교섭(exchange of porcelains between Joseon and Qing)무역도자(traded ceramics)외수자기(porcelains produced for ex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