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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조선후기 黃嶽山 畵僧의 활동과 碧巖門中의 助力

이용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Published: January 2018 · No. 297 · pp. 14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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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에서는 승려문중이 화승의 조형 활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기 위해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黃嶽山 直指寺에서 일어난 佛事를 대상으로 이 시기 불사를 주도했던 벽암문중과 직지사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화승 卓輝, 性澄, 世冠 등과의 조력 관계를 밝혀보고, 벽암문중이 공유했던 拈花佛 도상이 문중의 조력을 받은 탁휘와 성징을 통해 불화로 조형화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br* 탁휘와 성징이 활동하던 시기 직지사 불사는 碧巖系 孤雲門中의 晴峯首英과 그의 제자 泳波性湖가 주도하였다. 청봉수영과 영파성호는 충청도에 세거한 벽암문중과 연결되어 있으며 탁휘 또한 충청도 화승의 화맥과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이런 연관성은 탁휘가 직지사에 정착하고 〈남장사 감로도〉(1701)에 청봉수영이 증사로 참여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탁휘에 이어 직지사 수화승의 지위에 오른 성징은 봉곡사에 세거한 碧巖系 暮雲門中 출신이다. 성징은 탁휘의 화맥과 화풍을 계승하는 한편 벽암문중을 기반으로 경상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성징은 龍眠이란 특정 용어를 사용하여 황악산 직지사 수화승의 위상과 정체성을 드러내었다. 탁휘와 성징에 이어 황악산 화승집단의 수화승으로 활동한 세관은 새로운 불사운영주체인 모운문중의 鏡月泰鑑과 직지사 불사를 함께하였다. 세관은 성징과 마찬가지로 용면이란 호칭과 직지사 화승임을 강조하며 활동하면서 황악산을 거점으로 한 체계적 조직을 갖춘 화승집단을 구축하였다. 한편, 탁휘와 성징은 꽃을 든 석가불을 주불로 하는 〈선석사 영산회괘불도〉(1702)와 〈용문사 영산회괘불도〉(1705)를 제작하였다. 이 拈花佛 도상은 17세기에 벽암문중이 간행된 불서의 변상도로 표현되면서 확산되었다. 벽암문중의 조력을 받는 탁휘와 성징 역시 변상도를 통해 염화불 도상을 인식하고 있었고 문중의 사상적 뒷받침과 행정적 지원 속에 염화불을 주불로 하는 새로운 형식의 불화를 제작하였다.*br* 이처럼 탁휘, 성징, 세관 등은 황악산 직지사 불사를 주도했던 벽암문중의 지원을 받으며 수화승으로 성장하고 화승집단을 발전시켰으며 문중이 공유하는 사상을 기반으로 염화불이 표현된 새로운 불화를 제작하였다. 승려문중을 기반으로 한 화승의 활동과 불화 제작은 이 글에서 살펴본 황악산 직지사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승려문중이 발달한 조선후기 사찰에서 불사를 주관하는 운영주체와 이를 수행하는 화승은 같은 승려문중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사찰 불사 때 화승이 활동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Keywords: 승려문중(僧侶門中Monastic Clan)벽암각성(碧巖覺性Byeogam Gakseong)탁휘(卓輝Takwi)성징(性澄Seongjing)세관(世冠Segwan)염화불(拈花佛Buddha Holding a Fl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