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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畵史會要』를 통해 본 18세기 한중일 회화 교류

송희경

이화여자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5 · No. 288 · pp. 249-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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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일본 가노파 화가인 大岡春卜(오오카 슌보쿠, 1680-1763)가 1753년에 간행한 『畵史會要』를 통해 18세기 한중일 회화 교류의 한 단면을 고찰하되, 연구 범위를 ‘한화’ 즉 권1과 권2의 중국화로 한정하여 화목상의 특성과 표현 양상을 검토했다. 『화사회요』는 중국, 한국, 일본 회화의 畵圖를 총 6권으로 묶은 판각 인쇄물이다. 권1과 권2는 ‘漢畵’, 즉 중국화를 송과 원, 명과 청으로 나누어 정리했고, 권3부터 권6은 ‘倭畵’, 즉 일본의 무로마치, 모모야마, 에도 회화를 유파별로 편집했다. 무진사행의 수행화원인 崔北(1712-1786?)과 李聖麟(1718-1777)의 화도는 권2 「明淸之部」에 실려 있다.*br* 슌보쿠는 『화사회요』 권1과 권2에 중국의 고전을 도해하기 위해 서술적 인물화 형식을 도입하거나 설명이 가미된 초상화를 수록했다. 또한 시의도, 자화자찬의 산수화, 사생풍 화조화, 사군자화를 게재하여 중국 문인화에 대한 동경과 탐구도 드러냈다. 인물화가 묘사와 재현을 중요시한 가노파의 화업이라면, 시의도,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화는 에도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문인의 예술장르였다. 슌보쿠가 어떤 기준으로 한화를 선택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작가의 대표작을 싣지 않았고, 화제를 잘못 적는 오류도 범했다. 게다가 최북과 이성린의 그림을 「명청지부」에 게재하여 조선화를 일본에 전달된 중국 문화의 연장으로 보았다.*br* 일정한 규격의 판본이 지닌 표현의 제한성, 화제와 화목의 오류 및 감정 착오, 법칙 없는 화도의 나열 등, 『화사회요』가 지닌 한계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사회요』는 일본 화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켄카도를 비롯한 18세기 오사카 가노파에 한화의 범본을 전파했고, 이후 제작되는 화보의 초석이 되었다. 또한 소극적이나마 조선 회화를 일부 소개하여, 19세기 아사오카 오키사마가 『고화비고』에 「조선서화전」을 별도로 마련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렇듯 『화사회요』는 슌보쿠의 개인적 회화 취향뿐만 아니라 18세기 오사카 지역에 분포된 중국화의 현황을 알려주는 한중일 회화 총합 도록이다. 『화사회요』 연구를 통해 판각 인쇄물의 기능과 역할이 새롭게 규명되기를 기대해 본다.
Keywords: 오오카 슌보쿠(大岡春卜1680-1763Ōoka Shunboku)『화사회요』(『畵史會要』Gashi kaiyoThe Lists of Painting History)한화(漢畵Chinese paintings)가노파(狩野派kano 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