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洪武二十一年戊辰四月〉銘 가구의 양식과 명문 연구
문화재청
Published: January 2011 · No. 271·272 · pp. 45-75
Full Text
Abstract
십 여 년 전 한 학부모의 제보로 내면에 〈홍무21년무진사월일조홍산지만수산무량사(洪武二十一年戊辰四月日造鴻山地萬壽山無量寺)〉라는조성기 명문이 있는 가구를 보았다. 홍무 21년은 고려시대인 1388년을 가르키며 가구의 양식이 고려 건축의 양식과 유사하여 한눈에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전기 이전의 가구에 대한 학계의 공인된 유물이나 자료가 없어 〈홍무이십일년무진사월〉명 가구는 조선시대의 가구에 선행하는 양식으로 가구의 편년이나 가구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지만, 아직까지 학계에 공식 보고되지는 못하였고 또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br*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통틀어 목수라고 부르는데 목수에는 대목(大木)과 소목(小木)이 있다. 대목과 소목의 분류는 중국 송나라의 이계(李誡:明仲)가 1103년에 편찬한 『영조법식(營造法式)』에서 처음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소목장이라는 명칭이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져 『영조법식(營造法式)』의 분류에 따라 대목장과 소목장의 분류가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대목과 소목은 건물을 지을때 함께 작업을 하므로 그 양식과 기법상 상호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에 고려시대의 건축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 및 그 내부에 설치된 닫집, 부석사 무량수전의 후문과 우리나라의 장이라고 알려진 일본 쇼쇼인(正倉院)소장의 〈적칠문관목주자(赤漆文?木廚子)〉,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의 삼천사지(三川寺地) 출토 금동투각 목가구부재, 철제돌쩌귀, 경첩, 고리, 시우쇠못 등과 〈홍무이십일년무진사월〉명 장과의 양식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고려의 건축양식과 가구에서 볼 수 있는 이중문얼굴과 좌우비대칭의 널 사용, 쌍사면과 쌍사모 기둥, 삼각형으로 직절한 풍혈, 철제돌쩌귀, 경첩, 고리, 시우쇠못의 사용등 고려의 양식적 특징과 동일한 양식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br* 또 이 가구의 제작연대를 알기 위해 실측을 하여 각 부분을 역대척도와 비교분석한 결과 1956년 중국 산동 양산에서 발굴한 명 홍무 년간의 침몰선에서 출토된 31.8㎝의 영조척[骨尺]이 정수나 절반의 척수 혹은 짝수의 촌수로 정확히 환산되어 이 가구가 홍무 년간에 제작된 명의 영조척을 사용해서 제작하였다고 판단되었다. 명문의 서체에 있어서 ‘器’를 ‘(?+尤/器)’로, ‘量’을 ‘?+-+里로’등으로 서사하는 예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지만 근·현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이체자들이다. 이들 이체자를 통하여 〈홍무이십일년무진사월〉명 가구의 기록은 근현대에 서사되지 않고 홍무이십일년(1388) 당시에 서사된 명문임을 추찰할 수 있었다.*br* 이상에서 본 바와같이〈홍무이십일년무진사월〉명 가구는 고려 건축양식과 가구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을 보이고 잇으며 명나라 홍무 년간의 영조척 사용, 명문의 서체가 근·현대에서 사용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명문의 내용과 같이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