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도상 연구
홍익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8 · No. 297 · pp. 6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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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고려전기의 미륵보살입상은 타 시기 및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려의 독자적인 도상이다. 현재 알려진 17구의 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부터 간선로망 부근에 조성되는데, 본고에서는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도상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관촉사 상에서 두드러지는 양식적 특징은 석조 보개와 대의 착용이다.*br* 보개는 이른 시기부터 불정을 보호하는 장치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불교미술에서는 불교의 전통과 별개로 노자나 황제 등의 존상을 모시는 화개에 불상을 안치하는데, 이 때 나타나는 초기 화개의 표현이 불교적 표현과 결합하여 발전한다. 이중 구조, 정상부의 화염보주, 보개 가장자리의 垂飾 등은 고대 건축물의 지붕에서도 보이는 양식으로, 唐과 통일신라 불교미술에서도 다수 나타난다. 관촉사 상에 표현된 석조 보개는 18.12미터의 거석불로 조성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전통적인 표현을 환조의 화강암으로 번안한 결과이며, 여타 고려전기 상에 보이는 석조보개는 이와 같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관촉사 상을 모방하여 조성하였을 가능성이 있다.*br* 미륵보살의 대의 착용 도상은 해주 영파리 석조보살입상 등 우전왕식 대의를 걸친 보살상을 통해 이른 시기부터 조성되었다. 이 도상은 『불설미륵대성불경』에 전하는 ‘鷄足傳衣’에 의거하여 ‘석가모니의 대의를 전달받는 미륵보살’이 표현된 것이다. 『불설미륵대성불경』은 여타 미륵하생신앙 경전보다 분량 면에서 앞서는 만큼 서술이 자세한데, 특히 전륜성왕인 양거왕과 미륵의 인연을 다룬 내용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전륜성왕의 역할을 강조하는 『불설미륵대성불경』에 기반을 둔 거석불의 조성은 광종이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려 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br* 역사에 등장하는 전륜성왕은 대부분 정법에 의한 치세 이전에 무력을 사용하여 정적을 제압한다. 이를 감안한다면, 광종이 측근들을 잔혹하게 숙청한 후 불교에 의지하여 참회하려 한 실패한 위정자였다는 조선시대 이래의 인식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 대신 친불교적이었던 그의 일련의 행보가 개혁과 미륵하생도상의 거석불 조성, 불살생과 불교의례 진설 등 전륜성왕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