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경주 남산 長倉谷 출토 석조미륵불의좌상과 禪觀 수행
용인대학교
발행: 2016년 1월 · 289호 · pp. 3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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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장창곡 출토 석조미륵불의좌상은 지금까지 『三國遺事』의 기록과 불의좌상의 형식을 통하여 『彌勒下生成佛經』의 彌勒下生信仰과 관련되는 三花嶺 彌勒世尊으로 인식되어 왔다.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미륵보살의 성격을 지닌 반가사유상이 유행하던 신라 7세기 중반에 불의좌상으로 조성된 유일한 예라는 점과 그것이 신라 석굴의 초기 유형이라 볼 수 있는 횡혈식 석실분 형태의 석굴 속에 봉안되어 있었다는 점이다.*br* 석굴 속에 불의좌상을 봉안한 것은 신라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으나, 중국에서는 그것이 禪觀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초기의 선관 수행자들은 彌勒佛이 龍華樹 아래에서 설법하는 것을 듣고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 경전적인 배경은 『彌勒下生成佛經』이 아니라 『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이었다. 이 경전은 미륵상생신앙과 미륵하생신앙을 모두 포함하는 선관 수행과 관련되는 것으로, 7세기 중반 신라에서 미륵 신앙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석조미륵불의좌상도 장창곡 석굴 속에서 이 불상을 觀하면서 미륵불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이루고자 했던 신라 승려와 관련된다.*br* 석조미륵불의좌상이 선관 수행과 관련될 가능성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佛谷 감실마애조상과 塔谷 마애조상에 보이는 禪定印을 한 승려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신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징이다. 석조미륵불의좌상과 함께 7세기 중반에 조성된 경주 남산의 초기 불교 존상들이 당나라 長安 양식의 영향을 받았듯이 이들 존상에 보이는 선관 수행의 모습도 중국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br* 석조미륵불의좌상은 이러한 형식의 불상을 많이 봤던 경험이 있고, 이만한 수준의 불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7세기 전반 당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선관 수행승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출가 전에 이미 枯骨觀[白骨觀]을 닦고, 그 이론인 攝大乘論을 배우기 위하여 당의 장안에 유학했던 慈藏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선관 수행자이다. 설령 자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경험을 가진 승려가 『선비요법경』과 『섭대승론』의 不淨觀과 白骨觀 등 선관 이론과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을 통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는 미륵불을 觀하고자 장창곡 석실 속에 미륵불상을 조성했던 것이다.*br* 한편 『삼국유사』에 기록된 삼화령 미륵세존이 석조미륵불의좌상이 맞다면, 승려 生義의 불교 신앙이 불상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설령 자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신라 승려가 선관 수행을 목적으로 석조미륵불의좌상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br* 석조미륵불의좌상은 지금까지 『삼국유사』의 삼화령 미륵세존이라는 관념적인 틀 속에서 花郞과 미륵신앙이라는 설화적인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불상이 언제부터 설화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불상 조성의 원래 목적은 선관 수행과 관련된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