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The Calligraphic Style of Cheongsong Seong Su-chim
예술의전당
Published: January 2014 · No. 282 · pp. 35-60
Full Text
Abstract
논문은 16세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명필인 聽松 成守琛(1493-1564) 글씨의 연원과 특징 등 서예 세계를 고찰한 것이다. 그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隱逸之士이자, 개성적이고 활달한 書風으로 書壇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는 성수침에 대한 당대 문사들의 평가나 그가 교유한 문인들이 서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br* 그간 성수침에 대한 연구는 생애와 詩文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반면 서예사 방면에서는 본격적으로 조명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본고는 성수침 글씨의 특징과 전후 영향관계를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br* 성수침의 생애는 세 시절로 나눌 수 있는데, ‘初年 시절(1493~1525)’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靜菴 趙光祖의 문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중년 ‘聽松堂 시절(1526~1543)’은 그가 己卯士禍를 겪으면서 經世의 뜻을 버리고, 청송당을 세워 은거 생활을 했던 시기이다. 노년 ‘竹雨堂 시절(1544~1564)’은 경기도 파평산 아래 죽우당에서 살기 시작한 때부터 일생을 마칠 때까지이다. 이같은 청송당ㆍ죽우당 堂號는 생애를 나누는 기준이면서, 동시에 글씨에서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주요한 기준점이다.*br* 현전하는 성수침의 글씨는 眞蹟과 摹刻 필적으로 전하는데, 서체는 크게 楷書와 行草로 구분된다. 그의 서풍을 정리하면, 먼저 해서는 王羲之 등의 전대의 영향을 받아 기본적으로 松雪體를 크게 수용하였다. 다음으로 소자 행초 역시 송설체에 근간을 두면서 원필세의 특유의 필치를 보였다. 이는 文徵明의 글씨에서 보이는 요소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수용 여부는 확언할 수 없다. 끝으로 대자 행초는 소자나 중자행초에서 보이는 특징이 확대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다수의 필적에서 특유의 자유분방한 필치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鮮于樞의 서풍을 수용하여 자기화 한 것으로, 특히 선우추 서풍의 수용은 성수침 특유의 개성적 서풍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br* 이상으로 그의 글씨는 16세기 전반에서 볼 수 없었던 활달하고 밝은 서풍으로 당시 다른 서가들과 차별화되었다. 또한 元代의 서풍에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양식으로 변화ㆍ발전시켜 독자적인 서풍을 구사하였다. 또한 성수침은 15세기 유행되었던 송설체의 연미함을 탈피하려는 노력으로 이전의 어느 서예가의 글씨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격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그의 글씨는 원대 서풍에 답습에 그치지 않고 자유자재로 거침없는 필획으로 여러 가지 서풍을 구사하여 미묘한 정취를 보인다. 이에 성수침 서풍을 따르거나 비슷하게 구사한 명필이 다수 나오게 되었고, 서예가로서 당대와 후대 사람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그의 글씨는 생기 있는 운필로 창고한 기상을 보이는 개성풍이라는 측면에서 서예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