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the Joseon Mid-Period Yukbeondogam Euigwe (Record of the Meritorious Subject Ceremony) and Meritorious Subject Portraits
국립민속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0 · No. 266 · pp. 63-92
Full Text
Abstract
전쟁, 내란, 정쟁 등 나라의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赫赫한 공을 세운 신하를功臣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신들을 위해 국왕은 여러 가지 특권과 상전을 주었고, 이중에서 공신의모습을 그리는 일은 빠지지 않았다.*br* 공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기록은 『錄勳都監儀軌』이다. 이 책은 공신의 녹훈과정을 담은 의궤로 功臣勳號의 제정 및 功臣分等, 都監설치, 功臣賞格, 原從功臣, 功臣畵像, 功臣會盟宴, 敎書文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다.*br* 『녹훈도감의궤』중 공신화상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면, 녹훈 시기와 화상제작 시기는 길게는 3-4년에서 짧게는 수개월의 시차가 발생한다. 화상을 그릴 당시 이미 죽은 사람과 喪中에 있는 사람은그리지 않았다. 화상은 공신 1명당 1개의 화상만을 제작하고 제작이 완료되는 데로 功臣家에 보내졌다. 화상을 제작하는데 사용된 비단으로 화면과 족자의 형식을 알 수 있고, 그 밖에 사용된 재료와 안료들을 확인 할 수 있다. 화상 제작에 참여한 화원은 원종공신이 되었고, 화원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br* 조선시대의 공신화상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때, 중기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말엽에 이르는 시기로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큰 특징은 배경으로 채전이 인물의 무릎 높이까지 올라와 마치 벽지를 연상시키고, 거의 모든 신체가 7분면으로 표현되었다. 복제에서 사모는높이가 매우가 낮고, 단령의 트임 사이로 답호와 철릭이 묘사되었으며, 화려한 원색의 흉배가 가슴부분에 묘사되었다. 표현방법에서 얼굴은 음영이 거의 배제된 채 옅은 갈색 선으로 구분되었고, 의습선은 肥瘦없는 鐵線描로 묘사되었다.*br* 이러한 큰 틀 속에서 같은 시기에 그려진 공신화상은 도상이 일치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호성ㆍ선무ㆍ청난공신, 광해군대(위성ㆍ익사ㆍ정운ㆍ형난)의 공신, 그리고 정사ㆍ진무공신을 다시 2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br* 조선 중기 공신화상이 18세기에 미친 영향은 조선시대의 마지막 공신인 분무공신화상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얼굴의 육리문과 음영표현, 정두서미의 의습선 등은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다. 중기로부터의 변화로는 채전의 소멸, 한층 정확해진 신체골격의 표현과 투시도법의 적용 등을 들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