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鄭敾의 漢陽眞景과 李春躋 家門
서울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3 · No. 279·280 · pp. 119-143
Full Text
Abstract
정선(鄭敾, 1676-1759)은 1739년 <옥동척강도(玉洞陟崗圖)>, <풍계임류도(風溪臨流圖)> 와 1740년<서원소정도(西園小亭圖)>, <서원조망도(西園眺望圖)>를 제작하였다. 현재는 각기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는 이 4점의 작품은 18세기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이춘제(李春?, 1692-1761)를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춘제는 1739년 여름 조현명(趙顯命, 1691-1752), 황정(黃晸, 1689-1752), 조영국(趙榮國, 1698-1760), 송익보(宋翼輔, 1689-1747), 서종벽(徐宗璧, 1696-1751), 심성진(沈星鎭, 1695-1778)과 함께 자신의 정원 서원(西園)이 위치해있던 옥류동(玉流洞)에서 시작하여 청풍계(淸風溪)로 넘어가는 등산을 한 후 정선에게 <옥동척강도>와 <풍계임류도>를 그려달라고 주문하였다. 이후 1740년 봄에 이춘제는 서원에 정자를 축조한 후 정선에게 서원의 정자와 관련한 <서원소정도>와 <서원조망도>를 주문하였다. 이 4점의 회화 작품과 아회와 정자에 관련한 시와 기문은 하나의 화첩으로 장황하여 ≪서원첩(西園帖)≫이라는 이름 붙인 후 이춘제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었다.*br* 이춘제 가문은 ≪서원첩≫ 뿐만 아니라 정선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다. 전주이씨 영해군파에 비장되어 있는 『이가세고(李家世槁)』 내의 이춘제의 문집 『중은재유고(中隱齋遺稿)』와 그의 아들 이창급(李昌伋, 1727-1803)의 『일와옹유고(一臥翁遺稿)』에는 가문이 소장하였던 서적과 화첩의 목록과 정선과의 교유관계에 대한 다수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가문 소장품의 대부분은 정선의 한양진경이라는 특수한 화제에 집중되어 있어, 이춘제 가문이 정선의 한양진경의 중요한 주문자이자 후원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br* 정선은 평생을 거주하였던 한양을 말년에 가서야 그리기 시작하였다. 금강산도에서 한양진경으로의 화제가 변화한 데에는 경화세족의 유람과 유거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크게 작용하였다. 경화세족은 금강산과 같은 명산을 가지 않더라도 도성 내에서도 유람과 유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사대부의 명분을 지키면서 문화와 정치의 중심인 한양을 떠나기 싫어하였던 욕망이 정선이라는 지형적 그림에 능한 화가를 만나 ‘한양 진경’이라는 화제가 등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