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Water-Land Ritual Paintings (水陸會圖) of the Early Joseon Dynasty
동국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1 · No. 270 · pp. 35-65
Full Text
Abstract
고려시대와는 달리 유교를 사회 지배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불교는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하여 효를 중요시할 수 밖에 없었고, 사찰에서는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제례가 설행되었다. 이렇게 설행된 제례를 위한 불화들 중 水陸會圖가 있다. 수륙재 관련 불화는 중국과 일본에도 존재하고 있으나 水陸會圖와 같은 형태의 불화는 조선시대의 작품만 현존하고 있어 주목된다.*br* 현재 “甘露圖”, “甘露王圖”, “甘露會圖”등으로 통일되지 않은 채 불리고 있는 명칭을 재고찰 하였다. 기존의 다른 불화들의 명칭은 화폭에 표현된 그림의 주요 내용에 따라 결정되었으므로 이 작품들의 명칭 역시 화폭에 표현되어 있는 내 용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甘露圖”나 “甘露王圖”는 각각 수륙재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甘露’와 그 ‘甘露’를 내려주는 여래인 ‘甘露王如來’를 명칭으로 하고 있어 화폭에 담긴 내용을 대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甘露會圖”는 의식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 가장 적절하다 할 수 있으나 이는 수륙재의 별칭일 뿐 정식명칭이 아니라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명칭들을 대신하여 작품들의 화폭에 충실히 표현된 실제 의식의 이름인 水陸會를 사용한 “水陸會圖”를 새로운 명칭으로 제안한다.*br* 조선시대 사찰은 고려시대와는 달리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조선시대 16세기 중·후반 이후 사찰의 경제상황은 재와 의례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 제작된 水陸會圖는 그 화폭에 수륙회를 충실히 재현·시각화 하고 있다. 이러한 水陸會圖는 실제로 수륙재를 설행할 수 없는 민중들에게 있어 수륙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사찰에 있어서는 재나 의례를 설행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br* 최근에 소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本은 표구 부분에 남아 있는 묵서와 작품의 양식 검토를 통하여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전기 다른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특징적인 도상들이 보여 주목된다. 조선전기 水陸會圖 6점은 서로 약간의 차이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사한 화면구성 및 도상을 지니고 있으며, 표현기법에 있어서는 조선전기 불화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br* 조선전기 水陸會圖는 조선시대 水陸會圖가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始原期에 해당하여 조선후기 작품들에 비하여 정형화되지 않은 화면구성과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水陸會圖의 화면구성과 도상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로 중요성을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