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고려시대『妙法蓮華經』寫經變相圖의 도상 연구
Published: January 2009 · No. 264 · pp. 5-34
Full Text
Abstract
법화경의 대부분의 내용은 비유설화이다. 법화경의 비유설화들은 중국 당대부터 주요한 일곱가지 비유설화를 七譬라 하여 중요하게 인식되어왔다. 28품으로 구성된 법화경은 7권으로 분권되거나 혹은 작은 글씨의 1권으로 조성하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사성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의 법화경사경변상도는 대부분 비유설화중심의 7권본 변상도이며, 1권본 영산회설법중심 변상도 형식의 작품은 드물게 남아 있다. 7권본의 비유설화중심 변상도인 경우 화면 오른쪽엔 설법 장면이 왼쪽엔 각권의 주요한 비유설화들이 표현되었다. 영산회설법중심 변상도는 석가의 설법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법화경의 비유설화들은 내용이 매우 쉽고 친숙하여 고려의 여러 문집에서 자연스럽게 인용되었으며, 동시에 승려들의 여러 활동과 더불어 법화경 사성은 고려 후기 공덕신앙으로 유행하였다.*br* 법화경 사경변상도는 동시기의 다른 사경변상도에 비해 중국과의 영향관계가 확연해서, 수용양상에 대한 연구는 큰 의미를 갖는다. 고려 전기에는 거란대장경의 유입을 기점으로 요의 문물을 수용하였다. 고려 전기의 일본 金剛峯寺 소장본과 山西省 應縣 佛宮寺에 출토된 거란대장경의 법화경 사경변상도와의 비교를 통해서 이러한 수용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거란대장경의 판본변상도의 영향을 받은 金剛峯寺본은 거란대장경의 삼초이목도상과 남송대 판본으로 자리 잡는 삼초이목 도상의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당대 돈황에서 雨中耕作 장면으로 표현되던 삼초이목 도상이 상단의 용의 모습, 하단에는 도롱이를 입은 인물의 모습으로 정착되는 변화과정의 중요한 한 단계를 金剛峯寺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br* 고려 후기에 들어서면 고려 전기와 다른 양식변화가 이루어져 새로운 판본의 수용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남송으로부터의 여러 출판물의 유입이 이루어졌고, 이 출판물들은 고려에서 다시 영인되어 유포되었을 것이다. 주목해야할 점은 동시기 元의 판본변상도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후기 근간을 이루고 있는 본은 남송대의 판본이라는 것이다. 특히 남송대의 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후기 유행본은 두 가지 정도로 한정되어 유행하였다는 사실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