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Pyoam Kang Se-hwang's Ink Bamboo Paintings
Published: January 2007 · No. 253 · pp. 159-184
Full Text
Abstract
豹菴 姜世晃(1713-1791)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중 한 명으로 조선후기 화단에 南宗文人 畵風의 수용과 정착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문인화풍의 진작에 매진했던 만큼 문인화의 주요한 분야 중 하나인 묵죽화에 남다른 관심과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노년에 이르러서는 여타의 화과보다도 墨竹畵에 가장 많은 관심과 공력을 들여, 그의 회화세계에서 묵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br* 그는 30대부터 묵죽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 시기 묵죽화들은 대체로 습작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 시기 묵죽화는 현존작을 찾아볼 수 없으며, 實作을 통해 강세황 묵죽화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40대 이후 중년기부터이다. 그의 중년기 (40-50대) 작품들은 대체로 『十竹齊畵譜』, 『芥子園畵傳』 같은 明淸代 화보를 바탕으로 남종문인화풍의 담백하고 유연한 필치의 사의적인 묵죽화풍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절필기를 지나 화필을 다시 잡기 시작한 노년기 (60-70대)에는 중년기 묵죽화풍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노년기 묵죽화에서 엿보이는 가장 주요한 특징은 灘隱 李霆(1554-1626)과 岫雲 柳德章(1675-1756)으로 이어지는 전통묵죽화 양식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 결과 명확하고 단정한 필치, 여유로운 공간의 운용과 배분을 통해 평온하고 담백하면서도 엄정함이 내재된 독특하고 개성 있는 묵죽화풍 창안해 내었다.*br* 강세황 묵죽화에서 간취되는 이러한 다층적인 미감은 남종문인화풍에 천착하며 전대 양식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회화적 지향과 여전히 사실성을 중시하는 당대 문예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겨난 산물로 이해된다. 이는 환언하면 조선후기 화단에서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남종문인 화풍의 수용과 조선적인 변용이 묵죽화 분야에서도 진행되었으며 양식적인 완성을 이룬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br* 따라서 강세황 묵죽화의 특징과 성격을 단지 중국 명대 문인화풍과의 관련성에만 국한하여 이해하는 견해는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명대 묵죽화 중 강세황의 묵죽화와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거론할 만큼 유사성을 가진 작품이 찾아지지 않는 것이나 아직까지 명대 묵죽화에 관한 그의 언술이 찾아지지 않는 점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점들이다. 따라서 강세황의 묵죽화, 그중에서도 노년기의 묵죽화는 명대 묵죽화풍의 영향보다는 오히려 조선 전통 묵죽화풍의 연관성에 좀더 많은 비중을 두고 접근해야 그 양식적인 특정과 의미가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br* 이런 강세황의 묵죽화는 그의 만년 제자였던 紫霞 申緯(1769-1847)를 비롯하여 楓皐 金祖淳(1765-1832), 蘇山 宋詳來(1773-1843) 등 많은 후대 화가들에 영향을 미치면서 조선말기 초엽까지 지배적인 묵죽화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풍미 속에서 다소 침체되었던 묵죽화를 위시한 사군자화를 화단의 주류로 다시 부상시키는 데도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br* 따라서 강세황의 회화세계에서 묵죽화는 그의 예술적 지향이 가장 잘 구현되었던 화과일 뿐만 아니라, 그의 회화사적인 위치를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강세황은 진정한 의미에서 조선후기 묵죽화풍을 창안하고 선도했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강세황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시대 회화의 전개에서 그의 묵죽화가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재조명되어야하며, 이에 따른 정당한 평가가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