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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A Study on the Paintings of Gwanagje Jo Yeong-seok

이은하

Published: January 2005 · No. 245 · pp. 117-155
Full Text

Abstract

본고는 18세기 문인화가인 觀我齋 趙榮祐(1686-1761)의 회화관과 작품에 대한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조영석은 詩書畵에 두루 능하였으며 특히 인물화 방면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다. 그의 현전작으로는 산수인물화와 화조화, 풍속화 등 다양한 화목의 작품들이 전해지는데, 이 중 유독 풍속화가 주목을 받아왔다. 삶의 여려 단상을 즉물사생한 조영석의 풍속화는 사의적 문인화를 추구한 당대 사대부들의 회화풍토에서는 소재나 기법상에서 가히 파격이라 할 만큼 독창적이기 때문이었다. 선행 연구에서는 조영석이 주장한 ‘卽物寫眞’론을 바탕으로 그의 풍속화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동일한 맥락의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정작 조영석은 진경산수화가 아닌 화보와 명대 화풍을 개성적으로 수용하여 재구성한 전통 문인화풍의 산수인물화를 추구하였다. 이는 실제 유람공간을 구현하는 일은 사대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긴 그의 유자적 가치관 발로의 결과로 사료된다. 그의 회회작품과 문집 『觀我齋稿』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조영석은 회화의 가치를 우의적이고 효용적인 데 두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회화관의 핵심으로 다루어지던 ‘즉물사진’ 은 작화에 임하는 작가의 창의적 태도 정도로 규정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가 중점을 두었던 회회적 가치는 傳神을 통한 ‘活畵’에 있음을 고찰하였다. 그의 활화에 대한 욕구는 남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麝臍帖》에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러한 예술의지와 천부적인 인물화의 재능, 사대부로서의 경세관 등이 맞물려 새로운 양식의 풍속화를 창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조영석의 예술적 행보는 조선 후기 회화사의 대종으로 여겨지는 진경산수화의 유행에 동참하지 않았던 당대 사대부들의 회화경향 및 작가의 예술의지 발현에 따른 다양한 회화양식의 창출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고찰은 조선 후기 회화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一助할 것으로 판단된다.
Keywords: 조영석(趙榮祏Jo Yeong-seok)관아재(觀我齋Gwanaje)관아재고(觀我齋稿Gwanajego)즉물사진(卽物寫眞Jekmulsajin)활화(活畵Hwalhwa)사제첩(麝臍帖Sajech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