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록
Research Article

조선 후기 선원전의 祭物과 祭器, 儀仗, 그리고 봉안 어진의 성격과 기능

손명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발행: 2021년 1월 · 312호 · pp. 3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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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제물과 제기, 전내 감실 의장, 그리고 봉안 어진에 반영된 조선 후기 선원전의 성격과 기능을 고찰하였다. 조선 후기 선원전은 궐내 왕실 가족 중심의 제향 공간으로 비유교적 전통의 탄신 다례가 대표적 의례로 확립되었다. 왕실 여성들의 참례와 제향 준비에 대한 적극적 참여는 남성 신료들이 공적 임무를 맡아 수행한 국가 제향과 대비되었다. 중박계·산자 등 유밀과 중심의 제물을 바치고 유제 제기를 주로 사용한 영희전 등 공식 진전과 달리 선왕이 생전 즐긴 육류와 전복 등의 진미, 옥·금·은으로 된 제기 등 최고급 제물과 제기를 바치고 선왕이 생시 사용한 기명을 해당 실의 제기로 전용하기도 했다. 선원전 탄신 다례의 제물과 제기는 국왕 생전 생일 등 특별한 날 행해진 왕실 진찬, 그중에서도 가장 성대한 내진찬과 유사하였다. 선원전 제향과 제물·제기의 특성은 유교적 제향을 지내면서도 생시처럼 선왕을 모신 혼전에서 왕실이 사적으로 행한 탄신다례 등의 의례를 계승하고 있었다.*br* 선원전은 18세기 전반부터 어탑과 당가, 삼면 오봉산병풍 및 북벽의 모란병풍으로 殿內 감실의장을 구성했는데 일제강점기 조성된 신선원전도 이 같은 감실 의장의 기본 구성을 잇고 있었다. 선원전 감실 의장은 속제에 편입된 태조진전과 영희전이 일면 오봉산병풍을 세우고 모란병풍은 사용하지 않은 것과 구별되며, 왕실 제향 공간 중 혼전 의장과 높은 유사성을 보였다. 제향과 제물·제기, 그리고 감실 의장의 특징은 선원전이 부묘 이후 폐지된 혼전을 계승해 현왕과 대비 등 왕실가족이 궐내에서 선왕을 생시처럼 모실 수 있는 상설화된 제향 공간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19세기 이후 선원전은 북벽의 모란병풍 외에 동·서벽에 매화장자, 殿內 해반도병풍 등을 추가적으로 배설하며 내부 공간을 대형의 그림 병풍과 장자로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조선 왕조의 다른 제향공간에서 찾기 어려운 특징적 면모이다.*br* 선원전의 성격은 봉안 어진의 선정과 기능에도 영향을 미쳤다. 法服의 면복 또는 원류관복 전신상 어진을 주로 봉안한 영희전과 달리, 선원전은 일상의 사무를 볼 때 입은 익선관·곤룡포본을 주로 봉안하고 군복본 어진과 반신상인 소본도 봉안했다. 선원전에 전봉 또는 봉안할 어진 선정 시 국가제향 공간인 영희전에 비해 격식과 형식적 요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으며, 국왕과 대비의 선왕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감정을 충족시키는 여부가 전봉 또는 봉안 어진의 선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키워드: 선원전(Seonwonjeon)진전(royal portrait halls)어진(portraits of kings)제기(ritual vessels)제물(ritual foods)다례(tea ritu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