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高麗時代 平壤 栗里寺址 五層石塔에 관한 연구
인천시립박물관
발행: 2018년 1월 · 298호 · pp. 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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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유형의 석탑이 지역성을 강하게 나타내며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한다. 평양 율리사지 오층석탑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의 율리사지에 건립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어 현재는 일본의 오쿠라슈코칸에 있다. 율리사지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에 栗寺面으로 표시 되어 있으며, 현재 大同江面에 있는 栗里가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br* 오쿠라슈코칸 측은 경복궁 안에 있던 資善堂을 일본으로 반출시키고 그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다각다층석탑을 물색한다. 당시 무거운 석조물을 일본까지 반출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정치적으로는 데라우치 마사타게, 경제적으로는 오쿠라 가이하치로, 학문적으로는 세키노 타다시 의 보이지 않은 힘이 합해져 일본으로 석탑을 반출할 수 있었다. 경복궁 안에 있었던 자선당은 1915년 겨울 일본으로 반출되어 약 9개월의 공사를 거쳐 1916년 9월 30일 조선관으로 새롭게 재건된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서 석탑 반출의 가장 유력한 시기는 자선당의 공사 기간 중에 세키노 타다시가 1916년 3월 11일, 13일, 15일에 오쿠라슈코칸을 방문하여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따라서 평양 율리사지 오층석탑은 1916년 3월 11일 이후부터 1916년 9월 30일 조선관 개관 시점으로 추정해 볼 수 있으며, 좀 더 시기를 좁힌다면, 『古蹟及遺物保存規則』이 발표된 1916년 7월 4일 이전이 되겠다.*br* 율리사지 오층석탑은 전체가 팔각으로 이루어진 다각다층석탑으로 기단은 삼단계단식기단과 불상대좌식기단이 혼합된 적층식기단으로 구성되었다. 불상대좌식기단에는 16개의 귀꽃이 조각되어있으며, 기단의 면석에는 화형안상과 겹 우주의 표현이 되어있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기단의 형식은 고려시대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청석탑과도 양식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으며, 승탑, 석등과 같이 동시대의 석조물과의 관계도 엿 볼 수 있다. 옥개석은 삼단의 층급받침을 기본으로 우동과 추녀가 표현되어있다. 우동의 끝부분에는 팔각 전체에 귀꽃이 조각되어있으며, 옥개석의 빗면 끝부분에는 이매기의 표현까지 나타난다. 이처럼 율리사지 오층석탑은 건축적인 요소들이 함축적으로 남아있어 세부적으로 목조건축물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율리사지 오층석탑의 불상대좌식기단은 고려 11세기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기단의 하나이며, 화형안상과 겹 우주의 표현 또한 11세기 일반형석탑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식적인 특징 통해서 율리사지 오층석탑은 11세기로 편년을 도출해 볼 수 있다. 율리사지 오층석탑은 다각다층석탑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함께 지역양식과 시대양식을 모두 내포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석조문화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