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ribute Offerings (Pyŏljinhŏn) during the Reign of King Sŏngjong and Chosŏn Crafts in the Fifteenth Century
1 National Museum of Korea
Abstract
This study reexamines the practice of Pyŏljinhŏn (special tribute offerings) carried out during the reign of King Sŏngjong at the request of the Ming imperial court, with the aim of reassessing the status of Chosŏn craft production in the fifteenth century from an art-historical perspective. Whereas previous scholarship has focused primarily on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implications of Pyŏljinhŏn, this paper analyzes the tanja (itemized lists) recorded in the Annals of King Sŏngjong in order to reconstruct aspects of early Chosŏn craft culture that no longer survive today. The objects documented in these records represent the highest-quality royal crafts, embodying the advanced technical skills and refined aesthetic sensibilities of court artisans (kyŏnggongjang) of the period. Of particular note are the numerous ivory craft objects, which were produced despite ivory not being a native material of Chosŏn. Their presence attests both to the procurement of materials through international trade networks and to the highly developed processing techniques of Chosŏn artisans. In conclusion, the records of Pyŏljinhŏn provide concrete evidence of the high level of royal craft production in early Chosŏn and constitute a crucial source for understanding material culture exchange in fifteenth-century East Asia, including interactions between Chosŏn and Ming China.
Ⅰ. 머리말
1480년(성종 11) 7월 22일 예조판서 이승소(李承召)와 도승지 김계창(金季昌), 우부승지 성현(成俔)은 명나라의 사신에게 조선이 마련한 진헌품을 전달하기 위해 태평관(太平館)으로 향했다. 조선 측은 의복과 식품을 비롯한 다수의 예물을 준비하였고, 명의 사신들은 황제에게 올릴 물품의 수량을 직접 헤아렸다1. 이날의 진헌품은 당시 명의 황제 성화제(成化帝, 재위 1464~1487)와 세종대 공녀로 명 황실에 들어가 선덕제(宣德帝)의 후궁이 된 한계란(韓桂蘭, 1410~1483)2에게 보낼 선물로 구성되었다. 이는 정례적인 사행(使行)을 통해 방물(方物)을 바치던 통상적인 외교적 절차와는 구별되는 일이었다3.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이처럼 성화제와 한씨에게 보내진 물품과 관련한 기록이 다수 확인되는데, 이러한 사건은 ‘별진헌(別進獻)’으로 지칭된다(Fig. 1
성종대 별진헌은 성화제와 한씨 그리고 환관 정동(鄭同, ?~1483)5이 긴밀히 연계하여 황제의 사적 영역에서 처리된 사안이었다6. 기존 연구는 주로 한씨와 정동 등 조선 출신 인물들이 별진헌에 밀접하게 관여한 사실과 그로 인해 초래된 정치 · 외교적 함의에 주목해왔다7. 그러나 별진헌의 본질은 황제나 한씨가 요청한 ‘물품’ 그 자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마련한 물품의 명칭 · 종류 · 수량 · 재료 · 장식기법 등의 정보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별진헌 ‘단자(單子)’에 대한 고찰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조선시대 외교문서 가운데 진헌품 단자가 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점에서 『성종실록』에 수록된 13건의 별진헌 단자는 단순한 외교 기록을 넘어 15세기 조선 왕실의 공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별진헌 단자에 기록된 물품들은 당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상아, 금은 등 귀한 재료를 다루어 제작한 것으로, 실용적 기능과 장식성을 갖춘 공예품이다. 따라서 엄격한 외교적 예법에 따라 제작된 별진헌 물품은 단순한 진헌품이 아닌, 당대 기술력과 미의식이 집약된 ‘왕실 공예’의 범주 속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8.
본 논문은 정치 · 외교사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별진헌을 공예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실록 속 ‘단자’를 분석하여 현전하지 않는 조선 전기 공예문화의 구체화 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1477년경부터 1487년까지 전개된 별진헌의 과정을 살피고, 별진헌 물품의 제작 주체와 장인을 규명한다. 그리고 단자 속 물품의 구체적 사례로서, 조선의 토산물이 아님에도 다수 제작된 상아제 공예품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면서 15세기 조선과 명 사이에 전개된 별진헌의 공예사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부족한 조선 전기 유물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당시의 공예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규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Ⅱ. 성종대 별진헌의 성립과 전개
조선 전기 대명 외교는 중화 질서 속에서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사대(事大)를 중시했다. 15세기 내내 정례적인 사신 파견과 진공(進貢)이 꾸준히 이어졌으나, 황제의 개인적인 요구에 응하는 비공식적 외교 또한 활발했다. 건국 초부터 환관을 메신저로 한 사적 진헌이 빈번했으며, 특히 성종대에는 공녀 출신으로 명 선덕제의 후궁이 된 한계란, 그녀의 수종화자 출신 환관 정동, 그리고 명의 황제 성화제가 주축이 되어 이른바 별진헌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한씨는 선덕제의 후궁으로 어린 성화제를 양육한 인연으로 황실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세조 즉위와 의경세자(추존왕 덕종, 德宗, 1438~1457)의 추봉(追封)과 같은 왕위 계승의 문제부터 수우각(水牛角) 무역처럼 경제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교 현안에 개입하여 조선 조정과 명 황실을 잇는 역할을 했다9. 조선은 세조 연간부터 한씨를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선물을 보냈고, 1469년 성종 즉위 이후 한씨의 조카가 국왕의 모후(소혜왕후, 훗날 인수대비)가 되면서 그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10. 한씨 또한 왕실에 서신과 함께 실크, 보석, 법랑기 등 각종 고급 공예품을 보내며 유대 관계를 강화했다11.
초기 한씨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랜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노리개, 빗, 죽선(竹扇) 등의 물품을 요청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1476년(성종 7) 성종의 친정 이후 인수대비와의 인척 관계를 바탕으로 사적 진헌 압박은 점차 강화되었다12. 결정적으로 1477년(성종 8) 조선의 수우각 밀무역 사건이 발각되자, 한씨와 정동은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조선 측에 구체적인 사적 진헌을 요구하기에 이른다13. 이전까지 한씨에게 ‘인정(人情)’의 명목으로 선물이 오가던 관행이 ‘한씨의 족친을 사절로 보내 기명과 의복 그리고 식품 등 토산물선(土産物膳)을 바치라’는 노골적인 요구로 전환된 것이다14.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된 정동은 한씨의 의중을 전달하고 물품을 확보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15. 아울러 한씨 외에도 차씨(車氏) · 최씨(崔氏) · 안씨(安氏) 등 명 황실에 거주한 조선 출신 여성들이 본국 가족과 교류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을 통한 조선산 물품의 추가적인 유입 경로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6.
1470년 무렵, 명 황실에는 네 명의 황제를 모신 황실 어른으로 예우받던 한씨와 황제의 측근 환관 정동을 중심으로 조선산 물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황실 내 안정된 입지를 바탕으로 황제에게 조선의 문물을 전할 수 있었던 이들의 영향으로, 성화제 또한 조선에 대한 호기심과 취향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대명 외교에서 황제가 조선을 향한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에 따라서 개인적인 취향과 관련된 요구가 있었던 전례를 고려하면, 성화제의 조선산 물품에 대한 애호는 별진헌을 촉발한 주요 동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17.
실제로 1478년(성종 9) 황제는 황실의 조선 물건을 보고서 “선덕제 시기에는 보내던 것을 지금은 보내지 않느냐”는 물음을 던졌고, 조선에서 온 물품을 친히 완상하고 사용한다는 소식이 조선 조정에 전해지기도 했다18. 급기야 1481년(성종 12) 황제는 한씨의 족친으로 하여금 조선에서 생산된 방물을 가지고 와서 하례하라는 칙서(勅書)를 내렸고, 이는 명 황제의 생일에 맞춘 별진헌의 정례화로 이어졌다19.
별진헌에는 상아, 토표피, 초피와 같은 희귀 소재뿐 아니라 노리개, 장난감처럼 보통의 외교 예물의 범주를 벗어나는 사치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은 성절사와 함께 한씨 일족을 명에 파견하여 이를 전달했으며20, 물품은 예부(禮部)가 아닌 황제와 한씨의 거주 구역과 통하는 동화문(東華門)으로 직납(直納)되었다21.
특히 주목할 점은 황제와 한씨가 조선이 마련한 물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제작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은과 상아 등 귀한 재료를 직접 하사하며 제작을 독려했고, 한씨는 제작에 참고할 견양(見樣)과 재료를 보내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22. 조선 조정은 별진헌을 원 말의 수탈에 비견되는 극심한 부담으로 인식했고, 부유한 명 황실이 굳이 조선의 물품을 요구하는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으나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23. 1480년대 중반 한씨와 정동의 사망한 이후에야 별진헌 폐지론이 제기되었고, 이후 성화제가 세상을 떠난 1488년(성종 19)에 이르러서야 별진헌은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24. 장장 10년간 지속된 별진헌이 급작스럽게 실록에서 자취를 감춘 배경에는 새 황제 홍치제(弘治帝, 재위 1487~1505)가 노리개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더 이상의 진헌은 요청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25.
이 시기 별진헌을 계기로 마련된 조선의 공예품은 명 황실의 일상에서 실제 사용되었으며, 한씨 주변의 후궁들에게 사여(賜與)되거나 한씨와 정동이 황실 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6.
흥미롭게도 성화제 시기는 황실 내부뿐 아니라 강남(江南) 일대에서도 조선산 물품에 대한 애호가 고조되던 때였다. 특히 조선에서 제작된 말총 치마, 즉 ‘마미군(馬尾裙)’과 같은 의복이 사회 각층의 이목을 끌며 유행하였다. 마미군은 말총으로 짠 속치마로, 이를 착용하면 겉치마가 풍성하게 퍼져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15세기 조선은 속치마와 겉치마를 착용하거나 폭이 넓은 치마를 입어 풍성하고 과장되어 보이는 치마를 선호한 때로, 마미군은 조선식 치마의 풍성한 형태를 연출하기 위한 의복이었던 셈이다27. 명대 육용(陸容, 1436~1494)은 『숙원잡기(菽園雜記)』에 ‘마미군은 조선에서 비롯되어 경사(京師)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상인과 귀공자뿐 아니라 성화제 말엽에는 조정의 신료들까지도 이를 착용하였다’고 기록했다28. 구도영은 육용이 언급한 ‘경사’를 남경(南京)으로 보면서, 제주도와 중국 남방 지역(특히 소주[蘇州]) 간의 해상교역을 통해 조선산 마미군이 강남으로 유입되어 유행하였음을 밝혔다29. 1487년(성종 18) 제주에서 표류하여 강남 지역에 도착한 최부(崔溥, 1454~1504)가 종의(鬃衣, 말총으로 만든 옷)에 대한 질문을 받은 사실이나, 1490년(성종 21) 제주도에서 말총으로 옷을 제작, 판매했다는 기록은 명대 강남 지역에서 조선산 의복 또는 조선의 의복 착용 방식이 유행했음을 방증한다30.
이처럼 공식적 ·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조선의 의복과 공예품은 명으로 유입되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더불어 조선의 의복, 장신구를 비롯한 물산에 관한 정보는 1488년(성종 19) 조선을 방문했던 명 사신 동월(董越, 1430~1502)이 저술한 『조선부(朝鮮賦)』의 사례처럼 문학 작품으로 서술되어 중국 전역에 유통되기도 했다31. 결론적으로 성화제 시기는 명의 남과 북, 황실과 민간에서 조선산 물품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수요가 동시적으로 관찰되는 때이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도 있는 고찰을 요구하나, 15세기 명대 공예문화 속에 조선산 물품의 색, 형태, 디자인, 기술 등이 인상을 남겼고, 그 영향으로 조선산 공예품을 요청하는 별진헌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Ⅲ. 별진헌 단자의 형식과 내용
1. 단자의 형식과 서술 구조
『성종실록』에 전하는 별진헌 기록에는 명과 조선이 주고받은 물품 목록인 ‘단자’가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외교문서 가운데 외교 예물 목록 단자가 남아 있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실록에 수록된 별진헌 단자는 당시 조선 조정이 한씨와 정동 그리고 황제가 요청한 물품을 정확히 준비하고 관리하고자 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단자들은 명 황제가 진헌을 요청하는 문서나 조선이 외교 사절을 통해 진헌품을 발송하는 기록 속에 포함되어 있다. 수취인은 주로 성화제와 한씨이며, 문서의 서술 분량에 따라 기재된 물품의 종류와 수량에도 차이를 보인다 (Table 1
Table 1 『성종실록』에 수록된 별진헌 단자 사례 Cases of Pyŏljinhŏn Lists Recorded in Sŏngjong sillok
| No. | Date | Purpose (Sender → Receiver) | Source (Sŏngjong sillok) |
|---|---|---|---|
| 1 | June 1 | Request for Tribute (Lady Han → Chosŏn) | vol. 81, June 2 (Kyeyu), 8th Year |
| 2 | Jan. 1478 | Request for Tribute (Emperor → Chosŏn) | vol. 88, Jan. 10 (Kyeyu), 9th Year |
| 3 | Aug. 1478 | Tribute Presentation (Chosŏn → Emperor) | vol. 95, Aug. 13 (Imin), 9th Year |
| 4 | Dec. 1478 | Request for Tribute (Emperor → Chosŏn) | vol. 99, Dec. 21 (Musin), 9th Year |
| 5 | Sept. 1479 | Tribute Presentation (Chosŏn → Emperor) | vol. 108, Sept. 18 (Sinmi), 10th Year |
| 6 | May 1480 | Tribute Presentation (Chosŏn → Emperor) Tribute Presentation (Queen Insu → Lady Han) | vol. 117, May 8 (Chŏnghye), 11th Year |
| 7 | July 1480 | Tribute Presentation (Chosŏn → Emperor) | vol. 119, July 22 (Kyŏngja), 11th Year |
| 8 | Aug. 1480 | Imperial Birthday Tribute (Chosŏn → Emperor) | vol. 120, Aug. 19 (Pyŏngin), 11th Year |
| 9 | Dec. 1481 | Request for Tribute (Emperor → Chosŏn) | vol. 136, Dec. 22 (Imsul), 12th Year |
| 10 | Aug. 1483 | Imperial Birthday Tribute (Chosŏn → Emperor) | vol. 157, Aug. 18 (Muin), 14th Year |
| 11 | Sept. 1483 | Tribute Presentation (Chosŏn → Emperor) | vol. 158, Sept. 16 (Pyŏngo), 14th Year |
| 12 | Sept. 1483 | Tribute Presentation (Chosŏn → Lady Han) | vol. 158, Sept. 17 (Chŏngmi), 14th Year |
| 13 | Aug. 1484 | Imperial Birthday Tribute (Chosŏn → Emperor) | vol. 169, Aug. 24 (Muin), 15th Year |
『전록통고(典錄通考)』의 대중국 외교문서식에 따르면 예물 단자는 좌우로 겹쳐 접는 작첩식(折帖式)으로 작성하며, 물목 부분은 품목마다 행을 바꾸어 작은 글씨로 기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원본 별진헌 단자 또한 이러한 형식을 따랐을 것이나, 실록에 등사되는 과정에서 단 구성이 사라지고 줄글 형태의 나열식으로 변환된 것으로 보인다. 별진헌 물품은 조선과 명 양국 간에 약속된 예물이었으므로 그 종류와 구성, 수량 등의 정보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될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실록에 남겨진 별진헌 단자의 물품 명칭을 통해 종류와 재질은 물론 장식 소재와 기법 등 해당 물품의 조형적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별진헌 물품의 명칭은 ‘상아조각채장파산출수용필가(象牙彫刻彩粧巴山出水龍筆架)’ 예와 같이 ‘재질(상아)+기법(조각·채장)+문양(파산출수용)+기종(필가)’의 짜임새 있는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명대 유물 가운데 별진헌 단자의 기록과 흡사한 사례가 있어 명칭의 구성과 실체 물품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참고된다(Fig. 2
물품을 마련하고 단자에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는 일은 준비된 물건의 수효를 점검하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별진헌 단자의 서술이 상세하고 구체적인 이유는 황제와 주변인이 기울인 관심, 그 안에 포함된 물품이 지닌 외교적, 정치적 중요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자는 조선과 명 양국이 주고받은 공식 외교문서이므로, 여기에 기재된 용어는 당시 양국이 공통으로 이해하고 사용했던 보편적 공예 용어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2. 별진헌 물품의 유형별 분석과 특징
그렇다면 단자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물품이 기록되어 있을까? 성종실록에 등사된 13건의 별진헌 단자를 종합하면 총 1,419건의 물품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식품과 패각류, 피모류를 제외한 1,096건의 물품을 재질과 용도에 따라 분류하면 장신구, 직물 및 복식, 문방구 및 청완, 기명류, 생활용품, 실내장식, 무기류의 일곱 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Table 2
Table 2 별진헌 품목의 구성과 종류 Composition and Categories of Pyŏljinhŏn Items
| Category | Subcategory | Items (Motifs & Types) | Qty. |
|---|---|---|---|
| Accessories | Chogak (彫刻, Carving) | Yong (龍, Dragon), Piŏ (飛魚, Flying Fish), Ch'osu (草獸, Grass Beast), Saja (獅子, Lion), Wŏnang (鴛鴦, Mandarin Duck), Aba (鴨兒, Duck), Haech'i (獬豸, Mythical Beast), P'anghae (螃蟹, Crab), Sŏm (蟾, Toad), Sajagonsugu (獅子袞繡毬, Lion Rolling an Embroidered Ball), Sŏsik'yanggwa (鼠食香瓜, Rat Eating a Muskmelon) ⋯ | 447 |
| Toja (刀子, Knives) | Tansadoja (單事刀子, Single Dagger), Samsadoja (三事刀子, Three-implement Dagger), Osadoja (五事刀子, Five-implement Dagger), Sangap'a ch'anhwach'aejang tando(象牙靶鑽花彩粧單刀, Dagger with Polychrome Carved Ivory Hilt) | ||
| Nanga (囊兒, Pouches) | Sunanga (繡囊兒, Embroidered Pouch), Kadaea (茄袋兒, Eggplant-shaped Pouch), Kunanga (扣囊兒, Buttoned Pouch), Ch'ŏmnanga (貼囊兒, Double-layered Pouch), Kŭmsŏnnanga (錦線囊兒, Embroidered Pouch), Myŏnch'unanga (綿紬囊兒, Silk Pouch) | ||
| Hwanjehyu (還提携, Hooks) | Such'oŏ (水草魚, Fish and Aquatic Plants), Moktanhwa (牧丹花, Peony), Sayong (獅龍, Lion and Dragon), Hwagwa (花果, Flowers and Fruits), Ma (馬, Horse) | ||
| Kuja (鉤子, Hooks) | Pŏnsinsu (番身獸, Exotic Beast), Ch'osu (草獸, Beast and Grasses Design), Ch'ŏllok changch'unhwa (天鹿長春花, Celestial Deer and Roses), Hahwa kyech'ŏk (荷花鸂鶒, Lotus and Purple Mandarin Duck), Haenghwaa (杏화鵝, Apricot Blossoms and Goose) | ||
| Textiles & Clothing | Myŏnch'u (綿紬, Silk) | Tagalmyŏnch'u (茶褐綿紬, Brown Silk), Chamyŏnch'u (紫綿紬, Purple Silk), Nongmyŏnch'u (綠綿紬, Green Silk), Taehongmyŏnch'u (大紅綿紬, Bright Red Silk), Hwangmyŏnch'u (黃綿紬, Yellow Silk), Yuch'ŏngmyŏnch'u (柳靑綿紬, Willow Green Silk), Ch'orongmyŏnch'u (草綠綿紬, Grass Green Silk) | 208 |
| Myŏnp'o (綿布, Cotton Cloth) | Surongmyŏnp'o (水綠綿布, Light Green Cotton), Chamyŏnp'o (紫綿布, Purple Cotton), Nongmyŏnp'o (綠綿布, Green Cotton), Taehongmyŏnp'o (大紅綿布, Bright Red Cotton), Hwangmyŏnp'o (黃綿布, Yellow Cotton), Tagalmyŏnp'o (茶褐綿布, Brown Cotton), Yuch'ŏngmyŏnp'o (柳靑綿布, Willow Green Cotton) | ||
| Chŏp'o (苧布, Linen Cloth) | Paekchŏp'o (白苧布, White Linen), Paeksaek sejŏp'o (白色細苧布, Fine White Linen) | ||
| Map'o (麻布, Hemp Cloth) | Hŭngmap'o (黑麻布, Black Hemp) | ||
| Kyŏmjikp'o (兼織布, Mixed Weave) | Chŏsagyŏmjikp'o (苧絲兼織布, Linen and Silk Mixed Weave) | ||
| Sama (衫兒, Shirts) | Paekchŏp'osama (白苧布衫兒, White Linen Shirt), Hŭngmap'osama (黑麻布衫兒, Black Hemp Shirt) | ||
| Kuna (裙兒, Skirts) | Paekchŏp'oguna (白苧布裙兒, White Linen Skirt), Hŭngmap'oguna (黑麻布裙兒, Black Hemp Skirt), Ch'orongmyŏnch'uŭigyŏpkuna (草綠綿紬裌裙兒, Grass Green Silk Skirt), Surongmyŏnp'oŭiguna (水綠綿布裌裙兒, Light Green Silk Skirt) | ||
| Sangŭi (上衣, Upper Garments) | Taehong myŏnju kyŏpch'ŏllik (大紅綿紬裌帖裏, Bright Red Silk Cheollik), Tagal myŏnju kyŏptapho (茶褐綿紬裌搭胡, Brown Silk Dap-ho), Ch'orok myŏnju kyŏpchiksin (草綠綿紬裌直身, Grass Green Silk Chiksin), Taehong myŏnju kyŏp-oa (大紅綿紬裌襖兒, Bright Red Silk O-a) | ||
| Stationery & Curios | Munbanggu (文房具, Stationery) | Yŏnsŏk (硯石, Inkstone), Hwangmop'il (黃毛筆, Yellow Bristle Brush), T'ohop'il (兎毫筆, Rabbit Hair Brush), Paekhuji (白厚紙, Thick White Paper), Yonghyangmuk (龍香墨, Ink Stick), Sanga chogak ch'aejang sajap'ilga (象牙彫刻彩粧獅子筆架, Polychrome Carved Ivory Brush Rest with Lion Design), Sanga chogak ch'aejang p'asan chulsu yong p'ilga (象牙彫刻彩粧巴山出水龍筆架, Polychrome Carved Ivory Brush Rest in the Shape of Mountains and Dragon) | 152 |
| Wanhŭia (玩戲兒, Toys) | Suwawa (睡娃娃, Sleeping Doll), Yowawa (要娃娃, Playing Doll), Chinbop'asa (進寶波澌, Persian Figure Offering Treasures), Hoehoe (回回, Muslim Figure), P'an'gwi (判鬼, Demon Doll), Sŏnin (仙人, Immortal Figure), Sohwasang (笑和尙, Laughing Monk), Hyangdongp'asa (香童波澌, Persian Figure Holding Incense), Chilgyowawa (跌交娃娃, Wrestling Doll) ⋯ | ||
| Vessels | Sang (箱, Boxes) | Ch'aejuksang (彩竹箱, Colored Bamboo Box), Hŭkch'ilssang (黑漆箱, Black Lacquer Box) | 82 |
| Hap (盒, Lidded Bowls) | Chuch'il mokhyang hap (朱漆목향盒, Red Lacquer Wood Incense Box), Hŭkch'il Najŏn Taeso Haba (黑漆螺甸大小盒兒, Large and Small Black Lacquer Boxes with Mother-of-Pearl Inlay), Samch'ŭng sagye kwahaba (三層肆季果盒兒, Three-tiered Box with Fruits of the Four Seasons Design), Sach'ŭng yonghaba (肆層龍盒兒, Four-tiered Box with Dragon Design), Haedanghwahaba (海棠花盒兒, Box with Begonia Design), Hwagwahaba (花果盒兒, Box with Floral and Fruit Design), Such'o kŭmŏ ŭnjŏnghaba (水草金魚銀錠盒兒, Silver-ingot-shaped Box with Aquatic Plants and Goldfish Design), Koha p'anghae yojahaba (枯荷螃蟹腰子盒兒, Box with Lotus and Crab Design) | ||
| Ch'unsŏng (春盛, Seasonal Box) | Ch'ilch'ŭng hwagwa yŏngmo ch'unsŏng (七層花果翎毛春盛, Seven-tiered Box with Flower, Fruit, and Bird Design) | ||
| Daily Necessities | Sŏnja (扇子, Fans) | Sejuksŏn (細竹扇, Fine Bamboo Fan), Sojuksŏn (小竹扇, Small Bamboo Fan), Hwamyŏnsŏn (畫面扇, Painted Fan), Wŏnp'asŏn (圓把扇, Round Fan) | 79 |
| Ch'osŏk · Chuksŏk (草席 · 竹席, Mats) | Pyŏnhwasŏk (邊花席, Bordered Floral Mat), Manhwabangsŏk (滿花方席, Square Mat with All-over Floral Design), Ch'aejuksŏk (彩竹席, Polychrome Bamboo Mat), Manhwasŏk (滿花席, Mat with All-over Floral Design) | ||
| Others | Ch'aejukch'im (彩竹枕, Polychrome Bamboo Pillow), Piswae (篦刷, Comb), Chukso (竹梳, Bamboo Comb), Mokso (木梳, Wooden Comb), Choba (鑷兒, Tweezers), Chŏnja (剪子, Scissors) | ||
| Interior Decor | Chogwae (弔掛, Hanging Decoration) | Kwiap kyŏngsu hwahap (龜鶴慶壽花盆, Design of Flower Pot with Tortoise and Crane), Sasang paekhwa (獅象伯花, Lion, Elephant, and Floral Design), Inmap'yŏngan (人馬平安, Peace for Men and Horses), Paeksa taegil (百事大吉, Great Fortune in All Affairs), Sansŏn pongsu (散仙捧壽, Immortal Offering Longevity) | 71 |
| Ch'unbun (春盆, Artificial Flower Arrangement) | Poap mongnanhwa (寶鴨牧丹花, Precious Duck and Peony Design), Hahwa kŭmŏ (荷화金魚, Lotus and Goldfish Design), Hahwa kyoch'o (荷화交草, Lotus and Intertwined Grasses Design), Yŏngji ch'osu (靈芝草獸, Lingzhi and Auspicious Animal Design), Hahwa kyech'ŏk (荷화鷄鶒, Lotus and Waterfowl Design) | ||
| Others | Pongjŏk (鳳的, Phoenix Motif), Kongjakchŏk (孔雀的, Peacock Motif), Tŭnggae (燈蓋, Lamp Cover) | ||
| Archery | Kung (弓, Bows) | Kanggung (强弓, Strong Bow), Chunggung (中弓, Medium Bow), Yakkung (弱弓, Weak Bow) | 57 |
| Chŏn (箭, Arrows) | Taegodorijŏn (臺古道里箭, Taegodori Arrow), Tuŏn'godorijŏn (豆彦古道里箭, Tuŏngodori Arrow), Sogodorijŏn (小古道里箭, Sogodori Arrow), Kŏrijŏn (居里箭, Kŏri Arrow), Sŏp'ojajŏn (西甫子箭, Sŏboja Arrow) |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장신구로, 전체의 40.8%에 달한다. 성화제는 조선에서 바쳐진 노리개를 직접 살펴보고, 한씨는 제작을 위한 구체적인 견양과 재료를 조선 사신에게 제공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장신구류에는 노리개의 주체부와 선추(扇墜)로 활용되는 각종 조각을 비롯하여 도자(刀子), 주머니[囊兒], 침가아(針家兒), 구자(鉤子), 환제휴(還提携) 등이 포함되어 있다.
노리개나 부채 끝에 매다는 조각물은 금은(金銀)과 상아를 비롯하여 우골(牛骨), 산양각(山羊角) 장아(獐牙), 호아(虎牙), 황양목(黃楊木) 등 희귀한 소재로 제작되었다. 단자에 기록된 형태는 쌍사자곤수구(雙獅子袞繡毬), 영지토(靈芝兎), 원앙(鴛鴦), 두꺼비[蟾], 호로(葫蘆), 용선(龍船), 화람(花藍) 등의 동·식물과 사물을 망라하며 명대 유물 가운데서도 문헌의 기록과 비견되는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Figs. 3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직물 및 복식류이다. 조선의 복식과 직물에 대한 성화제의 선호가 반영되어 면주(綿紬), 저포(苧布), 마포(麻布), 겸직포(兼織布) 등 다양한 종류의 직물이 포함되었다. 별진헌의 직물류는 다갈색, 자색, 녹색, 대홍색, 황색, 유청색, 초록색, 흑색 등 여러 색상이 포함되어 정기적인 진헌품보다 더욱 다채로운 색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복식류로는 삼아(衫兒), 군아(裙兒), 철릭[帖裏], 답호[搭胡], 직신(直身), 오아(襖兒) 등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양국의 복식 관습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선식 복식에 대한 명 황실의 구체적인 수요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문방구와 청완류(淸玩類)는 총 152건으로 전체의 13.9%를 차지한다. 백후지(白厚紙), 연석(硯石), 황모필(黃毛筆), 토호필(兎毫筆), 용향묵(龍香墨) 등의 소모품 외에도 상아로 제작된 고급 필가(筆架)가 확인된다. 특히 ‘완희아(玩戲兒)’는 상아를 조각하고 채색하여 만든 인형류로, 수와와(睡娃娃), 솨와와(耍娃娃), 쇄모사자(刷毛獅子)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명칭상 유아용 장난감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고급 재료인 상아를 정교하게 가공했다는 점에서 공간을 장식하는 애완기물 혹은 탁상용 조각으로 해석된다. 필가 또한 상아로 용과 사자 형태를 조각하고 채색한 것으로, 붓을 고정하는 실용성과 서재 공간을 장식하는 청완물의 기능을 겸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자와 합은 총 82건으로 대나무, 주칠, 나전, 금속, 상아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었다. 합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상아로 제작된 합과 춘성(春盛)은 다층합의 형태로, 각 층마다 과일, 꽃, 새, 인물 등을 정교하게 조각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음식이나 물건을 담는 실용기인 동시에 실내에 진설하는 감상용 기물의 성격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생활용품은 총 79건으로 부채, 깔개[席], 빗, 가위 등을 포함한다. 부채류는 세죽선(細竹扇), 소죽선(小竹扇), 화면선(畫面扇), 원파선(圓把扇) 등으로 세분된다. 영락제(永樂帝, 재위 1402~1424) 이후 조선산 부채가 명의 부채 문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별진헌의 부채는 명 황실 내에 조선산 부채에 대한 수요로 해석된다. 아울러 변화석(邊花席), 만화석(滿花席), 채화석(彩花席), 채죽방석(彩竹方席) 등의 깔개와 채죽침(彩竹枕) 등은 대나무나 왕골 등을 엮어 제작된 것이다.
실내 장식품은 총 71건으로 조괘(弔掛), 춘분(春盆), 만세패(萬歲牌), 등개(燈蓋)가 포함된다. 조괘는 상아를 여러 종류의 인물, 동식물, 화초로 조각하고 색을 칠해 만든 것이다. 벽이나 가구에 걸어두는 입체 장식품으로 추정되는데, 구학경수화분(龜鶴慶壽花盆), 사상백화(獅象百花), 인마평안(人馬平安) 등 길상적인 주제로 장식되었다. 춘분은 ‘오색융전(五색융전)’ 즉, 여러 색의 실과 직물로 만든 채화(綵花) 화분이다. 보압모란화(寶鴨牧丹花), 하화금어(金魚荷花), 영지초수(靈芝草獸) 등 꽃과 동물이 어우러진 정경을 구현했다. 만세패는 봉황과 공작의 형태로 제작된 의전용 패이며, 등개는 조명용 기구의 덮개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무기류에는 강궁(强弓), 중궁(中弓), 약궁(弱弓)을 비롯하여 대고도리전(臺古道里箭), 소고도리전(小古道里箭), 서보자전(西甫子箭), 거리전(居里箭) 등의 활과 화살이 포함된다. 이러한 무기류는 실전 전투용으로서 기능뿐만 아니라, 명 황실 내 의장(儀仗) 및 호위(護衛) 용도에도 적합한 형태와 격식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별진헌 단자는 장신구부터 무기류까지 광범위한 범주를 포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명의 황제와 한씨가 큰 관심을 보였던 장신구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마련되었고, 직물과 의복류, 문방구와 청완류, 기명류, 생활용품, 실내장식, 무기류 등이 그 뒤를 잇는다 (Fig. 6
Ⅳ. 별진헌 공예품의 제작과 공예사적 의미
조선 전기 유물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별진헌 관련 사료는 당시 왕실이 마련한 최고급 공예품의 기술, 재료, 기종, 장식 등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핵심적인 자료이다. 오늘날 전하는 조선 전기 공예품의 대다수가 도자 재질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별진헌 사료에 기록된 금·은(金·銀), 상아(象牙), 나전(螺鈿) 등의 기물은 15세기 후반 조선 왕실 공예의 풍부함을 실증한다. 더불어 별진헌 단자의 공예품은 조선 전기 체계화된 경공장 제도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어, 15세기 왕실 공예의 기술 수준과 제작 환경을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장에서는 별진헌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공예품이 진헌품으로 마련될 수 있던 제작체계와 장인 조직을 검토한다. 그리고 현전하는 유물은 극히 드물지만, 별진헌 단자에서 큰 비중을 보이는 상아제 공예품의 재료적·기술적 특성과 조형적 성취에 주목하여 그 공예적 의미를 검토하고 나아가 별진헌 단자의 물품들이 해석될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1. 제작체계와 장인
『성종실록』에는 고급 재료의 확보, 장인 동원, 물품 제작에 이르는 별진헌의 준비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별진헌은 칙서에 의해 공식화된 외교 사안이었기 때문에, 준비 과정 또한 엄격한 외교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무엇보다도 명 황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조선산 물품 그 자체였기 때문에, 조선 조정은 요청받은 물품을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동원해 완성도 있게 제작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의 ‘사대(事大)’ 조항에 따르면, 중국에 진상하는 예물은 사전 보고, 물품 선정, 봉함까지 엄격한 규범에 따라 관리되었다. 별진헌 역시 이 체계를 준수하였으며, 조정은 좋은 품질의 공예품이 확보하도록 특히 힘썼다. 황제와 한씨가 관심을 기울이는 별진헌 물품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다면 언제든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숙련된 장인의 참여는 필수적이었고 국가에서 가장 뛰어난 인력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별진헌에 기록된 공예품은 대부분 경공장(京工匠) 장인들의 솜씨라고 이해된다.
조선 전기 국가 제도 정비와 함께 확립된 경공장 체제 내에서 상의원(尙衣院)은 왕실 공예 전반을 담당한 핵심 관사였다. 공조(工曹)의 하위 관청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상의원에는 경공장 129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8종 582명의 장인이 소속되어 있었다. 의복, 장신구, 칠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장인을 보유한 상의원은 별진헌 준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별진헌의 규모가 이미 비대해져 준비할 수량이 적지 않았던 1482년에는 물품의 전반을 관리하는 상의원 별좌(別坐)와 실제 제작에 참여하는 상의원 장인의 수를 늘리자는 논의는 상의원이 별진헌 준비에 핵심적인 관사였음을 알려준다.
제작은 모두 궐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기록상 장인의 무리를 나누었다[分耦]는 점으로 보아 공정과 재료에 따라 분업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전반적인 작업의 관리 · 감독은 상의원 관원의 소임이었고 장인 출신 잡직(雜職) 관원인 주부(主簿)나 별좌가 물품 제작 실무 전반을 관리 · 감독했으며 상의원 제조(提調)는 별진헌의 준비 전반을 총괄했다.
아울러 제작 과정에서는 견양이 적극적으로 참고되었다. 견양은 장인이 제작품의 디자인을 정확히 구현하고 수요자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해 고안된 지침이다. 별진헌 물품은 조선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마련하기를 요청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 왕실에서 이미 사용하던 공예품의 형식이 우선 참고되었을 것이지만, 한씨가 직접 견양을 보내어 디자인 요구를 전달한 사례처럼 명에서 온 견양 또한 지침으로 사용되었다.
별진헌 품목 가운데 금은, 상아, 나전 등 고급 재료와 정교한 조각 · 세공이 특히 주목받았다. 황제는 “너희 나라의 노리개 물건이 대단히 좋다(汝國戲耍之物好甚)”고 칭찬하며 장인의 솜씨를 높이 평가했고 별진헌 물품의 품질이 뛰어나 중국 사신이 상아 잡상 제작을 감독한 상의원 관원 곽치희(郭致禧)의 승진을 추천한 사례는 조선산 고급 공예품이 외국의 시각에서도 뛰어난 수준의 물품이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일부 조선 관료의 시각에서 별진헌 물품은 ‘자질구레한 것[細瑣之物]’으로 폄하되기도 했으나, 왕실 최고 수준의 기술이 투입된 고급 공예품이었음은 분명하다. 요컨대 별진헌 물품은 국가가 관장하는 공예 생산 체제하에서 경공장의 숙련된 기술과 외교적 규범 그리고 물품 사용자의 개인적 취향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제작재료와 기술 : 상아제 공예품을 중심으로
별진헌 단자에서 주목할 현상은 기명, 문방구, 청완, 실내장식, 장신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상아제 공예품이 대거 확인된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은 코끼리나 상아를 얻을 수 있는 동물이 거의 서식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장인들은 상아를 가공하여 다양한 공예품을 제작하였고, 이는 별진헌 단자에 포함되었다. 이번 절에서는 별진헌 단자의 사례 분석으로 조선의 토산물은 아니었지만 별진헌을 위해 다종다양한 물품이 제작되었던 상아제 공예품의 제작 배경과 가공 기술 그리고 제작품의 종류와 의미를 살펴본다.
1) 상아의 확보
상아는 통상 코끼리의 엄니를 가리키지만, 바다코끼리나 일각고래 혹은 향유고래 등 해양 포유류에서 채취한 상아 또한 이 범주에 포함된다. 성종과 조정의 신하들은 조선의 토산물이 아닌 상아를 명 황실이 진헌으로 요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상아는 진헌에 적절하지 않은 재료였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상아제 유물은 극히 희소하지만, 별진헌 단자에는 상아로 만든 장신구, 문방구, 합 등의 명칭과 세부 가공 기법이 풍부하게 확인된다.
그렇다면 조선은 어떠한 방식으로 상아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가장 핵심적인 방안은 바로 외국과의 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실록에는 일본과 유구(琉球)가 조선에 상아를 조공품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다수 확인된다. 한편 명 황실에서도 내부(內府)에 소장하던 상아를 조선에 보내 별진헌 제작에 충당하게 한 사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상아는 본디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만든 조각 잡물(彫刻雜物)은 다 흠사(欽賜)한 상아로 만든 것이며 ⋯”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특히 1484년(성종 15)에는 명 황실이 상아 5매(枚)를 별도로 하사하면서 이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제작해 진헌할 것을 명하기도 했다. 이는 명 황실 차원에서 상아제 공예품 제작을 적극적으로 독려했음을 보여주며, 별진헌에서 상아제 공예품의 원활한 수급이 상당히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본과 유구 그리고 명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상아가 산출되는 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외국과의 무역 · 조공 네트워크를 활용해 상아를 얻을 수 있었다. 상아 교역에 있어서, 동남아시아 지역이 주목되는데, 명의 경우 베트남 일대의 안남(安南, 중부 베트남)과 점성(占城, 남부 베트남)을 비롯하여 진랍(眞臘, 캄보디아), 팽갱(彭坑, 파항), 아노(阿魯, 수마트라 중부 아루), 유불(柔仏, 조호르), 정기의(丁機宜, 말레이반도), 소길단(蘇吉丹, 자바) 등지에서 상아가 조공품으로 보내졌다. 유구는 14세기 후반 이후 중국 및 일본산 물품과 동남아 지역의 물품을 중개하는 무역을 전개했고, 이 과정에서 상아도 확보되어 조선으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조선은 유구, 일본, 명으로부터 상아를 받아 정교한 공예품을 제작하는 위치에 있었다.
2) 가공 기술과 제작품
별진헌 단자에는 상아로 제작된 문방구, 장신구, 소형 조각물과 함께 조각(彫刻) · 찬화(鑽花) · 채장(彩裝) 등의 기법이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기법은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조각채장’ 혹은 ‘찬화채장’과 같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조각은 새기고 깎아 형태를 만드는 기법이며, 찬화는 기물의 표면을 뚫어 문양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기법으로 이해된다. 채장은 유백색의 상아 표면에 색을 덧입혀 장식하는 기법으로 백제와 신라의 유물에서도 상아를 염색해 장식한 사례가 확인된다. 이러한 기법은 일본에서는 발루(撥鏤)라고 하는데, 신라와 당의 문헌에 나타난 ‘아루(牙鏤)’나 ‘각루(刻鏤)’가 곧 발루와 같은 계통의 기법으로 이해된다(Fig. 7
조선의 상아 가공 기술은 필가, 조괘, 완희아 등 다양한 기물에 적용되었으며 특히 합의 제작에서 그 조형미가 두드러진다. 명대는 절기에 맞춰 적절한 형태의 합을 사용하는 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한 시기로 합은 음식이나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실용적인 용도뿐만 아니라, 경사스러운 날 보기 좋은 과일과 과자를 담아 공간에 진열하는 의례 용품으로도 활용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조선에서 마련한 합도 명 황실에서 일상이나 의례적 용도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별진헌 단자에는 상아로 만들어진 삼층사계과합아(三層肆季果盒兒), 사층용합아(肆層龍盒兒)처럼 다층 구조의 합이나 수초금어은정합아(水草金魚銀錠盒兒), 고하방해요자합아(枯荷螃蟹腰子盒兒), 인물고사방승합아(人物故事方勝盒兒), 화과영모팔각합아(花果翎毛捌角盒兒)처럼 다양한 형태에 인물, 화조 등 장식 문양이 결합된 사례가 확인된다. 또는 보상화회문쇄구합아(寶相花回紋鎖口盒兒)처럼 자물쇠가 부착되어 더욱 복잡한 구조로 제작된 합도 포함되었다. 이는 15세기 조선 장인들이 합의 조형적 특징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의 공예품도 제작할 수 있는 상아 기술을 보유했음을 시사한다.
현전하는 조선 전기 상아제 유물은 희소하지만, 기록에 나타난 기종·기형·장식 문양의 다양성은 조선 전기에 이미 상아 가공 경험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상아제 공예품의 사례처럼, 별진헌 단자에 포함된 여러 공예품은 당시 조선 장인의 기술 역량과 양국의 공예 미감을 반영한 결과물로, 이를 문화적, 외교적, 기술사적 맥락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Ⅴ. 맺음말
본 연구는 그동안 정치·외교사의 이면으로만 여겨졌던 성종대 ‘별진헌’ 기록을 공예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15세기 조선 왕실 공예의 실체와 위상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성종대 별진헌은 조선 출신으로 명 황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한씨와 정동, 그리고 조선 물산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성화제의 개인적 취향이 맞물려 형성된 특수한 외교 사안이었다. 약 10여 년에 걸쳐 지속된 별진헌에는 금 · 은 · 상아 · 나전 등 고급 재료를 활용한 공예품이 다수 포함되었으며, 그 구체적인 준비 과정과 양상은 『성종실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본고에서 분석한 별진헌 단자(單子)는 엄격한 외교문서 양식에 따라 정교하게 작성된 것으로, 기종 · 기형 · 재료 · 기법 · 문양 등 세부적인 조형 정보가 구체적으로 반영된 기록이다. 실록에 남겨진 단자의 내용은 현전 유물의 공백을 보완하는 1차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고급 재료와 정교한 기법에 관한 내용은 조선 전기 공예의 기술적 수준과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며, 조선과 명 양국이 공유한 공예 용어와 구체적인 조형 정보는 15세기 동아시아 공예문화의 상호 교류와 접점을 탐구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이러한 자료들은 향후 동아시아 공예사 연구에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별진헌 공예품 역시 조선과 명을 넘어 보다 넓은 지역적 · 문화적 맥락에서 새롭게 고찰될 가치가 있다.
본 연구는 단자에 수록된 공예품의 일부를 시론적으로 고찰하였으나, 앞으로 재료 · 기법 · 기종 · 문양에 관한 보다 심층적인 규명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향후 별진헌 연구는 단자 속 텍스트를 매개로 조선과 명 사이의 물질문화 교류 양상과 장인의 기술적 역량 그리고 왕실 공예의 미감이라는 다양한 맥락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별진헌을 분석한 본 연구가 15세기 조선의 공예문화를 구체화하고, 이를 동아시아라는 더욱 넓은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