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ional Circulation and Maritime Trade Routes of Chinese Ceramics in Koryŏ Korea (918-1392)
** 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Professor, Division of Cultural Heritage Convergence, Korea University)
DOI: https://doi.org/10.31065/kjah.330.202606.001
Abstract
This study comprehensively analyzes Chinese ceramics excavated from Koryŏ -period sites to examine regional circulation patterns and reconstruct maritime trade routes. Based on a comparative examination of approximately 1,250 objects housed in domestic and overseas museum collections and around 800 excavated specimens, the study considers kiln site, ware types, vessel forms, and quantities.
The results reveal that the Kaesŏng and Haeju regions contained a diverse mixture of northern and southern Chinese ceramics and exhibited a wide range of vessel types. In contrast, the southern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were characterized by a predominance of Jingdezhen qingbai ware, Ding ware, Yaozhou ware, and black—glazed ware, while the Jeju region stood out with a remarkably high proportion of Longquan celadon. These disparities in types and vessel forms of Chinese ceramics excavated across the Korean Peninsula clearly reflect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of consumption patterns and distribution networks.
Furthermore, while previous literature-based studies generally suggested that the southern route—departing from Mingzhou in Zhejiang Province after 1073 and traveling via Heuksando Island along the southwest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was the primary maritime route to Koryŏ, this study presents a different perspective. By comparing the analysis of excavated ceramics with shipwreck artifacts and port sites along the northeastern and southeastern coasts of China, this research suggests that the Chinese ceramics entering Koryŏ likely departed from coastal ports in Hebei Province or the Shandong Peninsula, traveling across the Yellow Sea via the northern route. As an empirical approach based on excavated objects, this study offers a new perspective on the regional circulation and trade routes of ceramics, the primary commodity of maritime trade during the Koryŏ period.
본 논문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NRF-2022S1A5A2A01047377).
Ⅰ. 머리말
고려는 918년에 건립되어 1392년에 멸망하기까지 약 500여 년 동안 오대십국(907∼979), 송(960∼1279), 요(916∼1125), 금(1115∼1234), 원(1271∼1368) 등 중국의 여러 나라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으로 교류하였다. 한국 역사에서 고려시대만큼 활발한 문물 교류와 다원적인 국제 관계가 전개된 시기는 없었다.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남·북방 지역에서 제작된 도자는 고려의 다원화(多元化)된 대외 교류 및 교역 활동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이자, 고려시대 도자 문화의 다양성과 국제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는 20세기 초부터 일본 연구자들의 논문과 보고서에서 출토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었다.1 당시 수집된 중국 도자는 대부분 개성, 해주 일대의 고려 고분의 도굴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정확한 출토 상황이나 고고학적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중국 도자에 대한 연구는 주로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종류와 수량, 산지 등을 부분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였다.2 한반도 이남의 고려시대 사지, 관청지, 무덤 등에서 다양한 품종의 중국 도자가 출토되면서 2000년 이후부터 고려 유적 출토 중국 도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3 이후에 백자, 청백자, 흑유자 등 중국 도자의 특정 품종을 대상으로 기종·산지·유통 문제에 접근하여 분석하는 연구로 이어졌다.4 최근에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가 대량 공개되면서 단일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를 백자, 청백자, 청자 등의 품종별로 연구가 진행되었다.5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는 고려의 대중국 교류 양상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물질 자료로서, 기존 문헌 기록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문헌 자료가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비해, 출토 도자는 교역의 실제 양상과 유통 구조를 보다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던 고려 유적 출토 중국 도자의 전반적 양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 특히 지역별로 생산지, 기종, 수량, 분포 범위 등을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를 추정함으로써 그동안 문헌 기록에 의존했던 고려와 중국 간의 교역 상황을 실물 자료에 기반해서 규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어 국내·외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도자 약 1,300점과 고려시대 유적 약 49곳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편 800여 점을 조사하여 고려시대에 유입된 중국 도자의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6 이러한 분석에 기반하여, 첫째 개성, 해주 등 정치·행정 중심지, 둘째 한반도 이남 지역, 셋째 중·일 해상 교류의 기착지로 기능했던 제주 지역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의 품종과 기종을 분석함으로써 지역별 소비 양상과 유통 구조에 보이는 차이를 분석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고려에 유입된 중국 도자를 중국 송·금·원대 도자 수출항 유적의 출토 자료와 비교·분석함으로써,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고려 유적 출토 중국 도자의 현황과 자료적 한계
고려시대에 유입된 중국 도자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크게 세 개의 범주로 나누어서 살펴봐야 한다. 첫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도자이며, 둘째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었지만 현재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고려시대 사지, 궁궐지, 관청지, 무덤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고려 고분 등에서 도굴되거나 우연히 발견된 중국 도자로, 당시에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미술관 등이 수집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따라서 부여된 유물 번호에 따라서 소장 시기와 출토 지역 등을 추정할 수 있다. ‘개성(開城)’은 개성부립박물관에서 소장되었던 유물에 부여된 명칭으로, ‘개성’이 부여된 도자는 대부분 개성 일대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관(本館)’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지방의 분관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한 명칭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수집품을 의미한다. ‘덕수(德壽)’는 이왕가박물관을 전신으로 하는 덕수궁에 소장되어 있던 유물에 부여된 명칭으로 이왕가박물관의 수집품이다. ‘접수’는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소장품에 부여된 명칭으로, 대부분 20세기 전반경에 도굴된 것이다. ‘신수(新收)’는 1945년 이후 국립박물관이 수집한 유물에 부여된 명칭이며, 정식 발굴은 아니지만 한반도 내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도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예는 약 1,206점 정도를 확인하였다(table 1).7 이 중에 출토지가 개성 부근으로 기재된 예는 425건 502점이며, 출토지가 기재되지 않은 경우는 417건 531점이다.8 출토지가 기재되지 않은 중국 도자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여러 기록으로 볼 때 개성 일대와 황해도 해주 등지의 고분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개성은 고려 왕궁이 위치하는 수도였기 때문에 개성군에 역대 왕후 귀족의 고분이 무수히 많고 그 주변의 장단군, 풍덕군 등지의 고분에서 고려자기를 도굴했다는 기록이나 기사를 접할 수 있다.9 황해도 해주는 고려시대에 서해안 방위의 중심도시이자 개성을 지키는 수도 방위부로서 군사, 행정의 중심지였다. 해주에서 자주(磁州), 정주(定州), 길주(吉州), 여주(汝州) 등의 각종 도자기 종류가 많이 출토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10 특히, 해주만에서 근거리에 위치한 용매도에서 많은 고려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경덕진요 청백자, 자주요, 정요의 금채자기 등이 알려져 있다.11
Table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유적 출토 중국도자 수량(건/점)〉 Quantity of Chinese Ceramics (Pieces/Items) Excavated from Goryeo Dynasty Sites i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Artifact No. | Gaeseong | Gojeok | Deoksu | Bongwan | Jeomsu | Sinsu | Total |
|---|---|---|---|---|---|---|---|
| Quantity | 13 (21 pieces) | 4 (7 pieces) | 629 (713 pieces) | 144 (189 pieces) | 38 (38 pieces) | 216 (238 pieces) | 1044 (1206 pieces) |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해외 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도자는 약 93점을 파악하였으며, 유물의 출처가 한국인 경우로 한정하였다(table 2). 해외박물관에 소장된 예는 출처를 밝힐 수 있는 자료들이 확보되면 향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20세기 초에 이미 서양 연구자들 사이에서 고려 고분에서 출토된 백자가 송대 정요 백자인지 고려백자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연구의 화두였다.12 당시 서양에서 송대 백자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려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류가 정작 중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교류는 인정하였지만, 고려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들이 수입품이라고 보기에는 출토량이 너무 많고 운송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고려백자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13 필자가 파악한 해외 소장품 93점 가운데 정요 백자 15점, 경덕진요 청백자 32점, 광동성·복건성 일대의 백자가 19점으로 확인되어 백자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도자도 1,206점 중에 백자 및 청백자류가 약 645점으로 약 53%를 차지하는 경향과 유사하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의 특징에서 볼 수 있어서 대체로 고려에 송대 백자나 청백자의 유입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Table 2. 〈해외박물관 소장 고려유적 출토 중국도자 수량〉 Quantity of Chinese Ceramics Excavated from Goryeo Dynasty Sites in Overseas Museums
| Museum | Qty. |
|---|---|
| V&A Museum | 49 |
| Peter the Great Museum of Anthropology and Ethnography | 7 |
| Museum of Fine Arts, Boston | 13 |
| The Cleveland Museum of Art | 4 |
| Freer Gallery of Art | 12 |
| Tokyo National Museum | 7 |
| Museum Yamato Bunkakan | 1 |
| Total | 93 |
국내·외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도자 외에 궁궐지, 관청지, 사지(寺址), 무덤 등 고려시대 유적 약 49곳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의 품종과 수량 등을 조사하였다(table 3). 궁궐지는 개성 만월대 서부건축군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를 조사하였다. 서부건축군에 한정된 발굴이라는 점에서 전체 양상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으나, 개성에서 유통된 중국 도자를 고찰하기에는 적절한 자료로 판단된다. 관청지는 대중국 교역로의 중간 기착지였던 신안 흑산도 유적과 일본의 대중국 교역에서 기착지 역할을 했던 제주도 항파두리성 유적에서 용천요 청자의 출토 비중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14 사지는 전체 유적 가운데 중국 도자의 출토량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서울 1곳, 경기도 5곳, 강원도 4곳, 충청도 4곳, 경상도 3곳, 전라도 5곳, 제주도 3곳 등 한반도 이남 전역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고 있어, 지역별로 유입된 중국 도자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Ⅲ장에서 사지 출토 중국 도자의 품종과 기종이 지역에 상관없이 공통점을 보이는 특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Table 3. 〈고려시대 유적 출토 중국 도자의 수량〉 Quantity of Chinese Ceramics Excavated from Goryeo Dynasty Sites
| Sites | Palace site [1] | Government office sites [10] | Tombs [13] | Temple sites [25] |
|---|---|---|---|---|
| Qty. | 54 | 91 | 52 | 560 |
무덤은 13곳을 조사하였으나 고려시대 유입된 중국 도자의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유적 수와 출토된 중국 도자의 수량이 적은 편이다.15 다만 무덤 유적 중에 1940년에 발견된 함경북도 성진(城津, 현재 김책시) 탑평 고분은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된 자료로 주목된다.16 무덤에서 출토된 〈균유완(鈞釉碗)〉 3점, 〈백지흑화사이병(白地黑花四耳甁)〉 2점, 〈백유완〉 4점, 〈백유접시〉 2점, 〈흑유완〉 1점, 〈녹유잔〉 1점, 송대 동전 12점 중에 일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17 이 무덤에서 출토된 동전은 송대 숭령연간(1102~1106)에 주조된 〈숭령통보(崇寜通寶)〉와 〈숭령중보(崇寧重寶)〉이지만 〈균유완〉과 〈백지흑화사이병〉은 금대 말에서 원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무덤이 발견된 성진군 탑평은 현재 함경북도 김책시로, 1258년부터 1356년까지 쌍성총관부의 관할 지역이었다. 박물관에 소장된 금·원대 도자의 경우에 출토지가 함경도 일대까지 넓어질 가능성이 있고, 무덤의 피장자도 고려인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자료이다.
국내외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도자는 고려시대에 유입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대부분의 유물은 대략적인 출토 지역 외에는 구체적인 출토 맥락을 전혀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박물관 소장품과 한반도 이남의 유적에서 발굴된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방법을 통해 자료 편중과 맥락 결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Ⅲ. 중국 도자의 지역별 소비와 유통 양상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의 품종, 기종, 산지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역별로 분포 양상이 차별화되는 양상을 파악하였다. Ⅲ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첫째,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군사·행정 중심지였던 해주 지역, 둘째,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등 한반도 이남 지역, 셋째, 제주 지역이다. 이 세 지역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의 양상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개성·해주 일대 출토 중국 도자
20세기 전반에 개성과 해주 지역에서 발견되어 국내외 박물관에 소장된 중국 도자 1,033점과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남북 공동 발굴을 통해 고려 궁성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도자 53점을 대상으로 분석을 실시하였다(table 4). Ⅱ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립중앙박물관 및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 유적 출토 중국 도자의 상당수는 개성과 해주 일대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개성, 해주 일대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를 유약과 장식 기법으로 분류하고, 산지를 분석하였다. 먼저 비중이 높은 백자, 청백자, 흑유자, 청자 등의 양상을 보고, 그간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녹유자, 갈유·황유자, 자주요계 자기 등 개성, 해주 일대에서 주로 출토되는 중국 도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Table 4. 〈개성, 해주 일대 유적 출토 중국 도자의 산지 분석〉 An Analysis of the Origins of Chinese Ceramics Excavated from Sites in the Kaesong and Haeju Regions
(* Ratios Are Rounded to One Decimal Place)
| By Glaze Type and Technique | Kaesŏng/Haeju | Manwoldae Palace Site | Unknown | Per.(%) | Kiln Sites | Region | Period |
|---|---|---|---|---|---|---|---|
| White ware | 62 | 4 | 40 | 9.7 | Ding kiln | Northern | Song, Jin |
| Qingbai ware | 262 | 31 | 271 | 51.8 | Jingdezhen kiln, Chaozhou kiln, Kiln sites in the Anhui, Guangdong, and Fujian region | Southern | Song, Yuan |
| Black glaze | 57 | 5 | 83 | 13.3 | Ding kiln, Cizhou-type[Zibo kiln, Lushan Duandian kiln, Dangyangyu kiln], Jian kiln, Jizhou kiln | Northern+Southern | Song, Jin |
| Celadon glaze | 65 | 10 | 29 | 9.8 | Yuezhou kiln, Yaozhou kiln, Longquan kiln | Northern+Southern | Song, Yuan |
| Green glaze | 9 | - | 25 | 3.1 | Ding kiln, Cizao kiln | Northern+Southern | Song |
| Brown · Yellow glaze | 20 | - | 12 | 2.9 | Hunyuan kiln, Cizao kiln, Kiln sites in the Guangdong and Fujian region | Northern+Southern | Song, Jin |
| Dark brown glaze | 5 | 3 | 25 | 3.0 | Ding kiln, Cizhou-type[Dangyangyu kiln] | Northern | Song, Jin |
| White glaze | 11 | - | 14 | 2.3 | Cizhou-type[Lushan Duandian kiln] | Northern | Northern Song |
| White ground with black decoration | 7 | - | 11 | 1.7 | Cizhou-type[Lushan Duandian kiln, Bacun kiln] | Northern | Jin |
| White ground with sgraffito decoration | 0 | - | 7 | 0.6 | Cizhou kiln | Northern | Jin |
| Marbled ware | 0 | - | 6 | 0.6 | Cizhou-type[Dangyangyu kiln] | Northern | Song, Jin |
| Peacock blue glaze | 3 | - | 1 | 0.4 | Cizhou kiln | Northern | Yuan |
| Jun glaze | 0 | - | 5 | 0.5 | Jun kiln, Kiln sites in Shandong, Hebei, and Shanxi region | Northern | Jin, Yuan |
| Red and Green Enamel | 1 | - | 0 | 0.1 | Kiln sites in Hebei, and Shanxi region | Northern | Jin |
| Copper red glaze | 0 | - | 2 | 0.2 | Jingdezhen kiln | Southern | Yuan |
| Total | 502 | 53 | 531 | 1086 |
개성, 해주 일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 중에 백자 9.7%, 청백자 51.8% 정도로 백자류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백자는 북송에서 금대 하북성 정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약 106점으로 확인된다. 청백자의 산지는 강서성 경덕진요의 비중이 가장 크고, 복건성·광동성 일대 여러 요지에서 제작된 예도 약 40% 정도로 적지 않게 확인되지만 요지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18 이 중에서도 광동성 동남부에 위치한 조주요(朝州窯) 청백자의 경우에는 마고형주자(麻姑形注子), 봉수주자(鳳首注子), 고족배, 합, 연판문 소호 등 개성 일대에서만 다양한 기종이 확인된다.19 조주요는 청백자를 주요 생산품으로 제작하여 동남아, 한반도, 일본 등으로 수출하였으며, 특히 일본 하카타 일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중국 백자 중에 조주요산이 약 20% 정도 확인되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20 고려 유적에서 청백자류가 많이 출토되는 현상은 개성·해주 이외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당시에 송대 청백자가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21 개성, 해주 일대 출토 청백자의 제작 시기는 10세기 후반에서 13세기경까지 확인되어서 고려의 대중국 도자 교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2
흑유자는 약 13.3% 정도로 청백자에 이어서 두 번째로 고려에 많이 유입된 품종이다. 개성, 해주 외에 한반도 이남 지역에서도 출토되지만 두 지역 간의 차이점은 기종 구성과 품질에서 볼 수 있다. 한반도 이남 지역에서는 완류만 확인되는 반면에 개성, 해주 일대에서는 83점의 완류 외에도 매병(9), 호(10), 소호(8), 주자(9), 소주자(3), 병류(11), 통형잔(3), 등잔(1) 등으로 기종이 다양하고 품질이 높은 예가 많다. 흑유자의 생산지도 하북성 정요, 자주요, 하남성 노산단점요, 산서성 치박요, 복건성 건요계, 강서성 길주요 등으로 중국의 남방과 북방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 혼재되는 특징을 보인다.23
청자는 전체의 약 9.8%를 차지하며, 요주요산 72점, 월주요산 12점, 용천요산 9점으로 요주요산 청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요주요 청자의 기종은 완 46점, 접시 17점 순으로 비중이 높고, 이외에 발, 소호, 잔 등은 소량 확인된다. 요주요산 청자는 한반도 이남 지역의 사지에서도 주로 완과 접시류가 출토되어 공통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주요 청자류는 대체로 송대 요주요지의 편년안에 따르면 11세기 중후반에서 12세기 1/4분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24 개성, 해주 일대에서 출토되는 월주 청자는 주로 오대에서 북송 초기에 제작된 주자(6), 타호(2), 팔각호(1), 유개발(1), 잔탁(1)이며, 한반도 이남 지역에서 주로 완이 출토되는 양상과 다르다. 용천요 청자는 남송에서 원대에 생산된 소주자(1), 발(2), 고족배(2), 접시류(3) 등 소량이다. 개성, 해주 일대에서 출토된 중국 청자는 고려 10세기에서 11세기 전반까지 월주요산 청자에서, 11세기 중후반에서 12세기 전반경까지 요주요산 청자로 대체되는 상황을 볼 수 있다. 남송에서 원대 이후에는 용천요 청자가 유입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자주요계 자기는 하북성 자주요(磁州窯)를 비롯하여 하남성 수무현(修武縣) 당양욕요(當陽峪窯), 노산현(魯山縣) 단점요(段店窯), 우주시(禹州市) 배촌요(扒村窯) 등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25 장유(醬釉), 백유, 백지흑화(白地黑花), 백지척화(白地剔花), 교태(絞胎), 공작남유(孔雀藍釉) 등의 자주요계 자기는 송, 금, 원대를 거치며 고려에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table 4). 시대별로 유약과 장식 기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품질이 좋고 기종도 매병, 장경병, 통형잔, 주자, 타호, 호, 접시, 반 등으로 특수 기종과 일반 기종이 섞여 있다. 개성, 해주 지역에서만 중국 북방의 자주요계 자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양상은 Ⅳ장에서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를 재고하는 데 중요한 근거 자료이다.
자주요계 자기와 함께 중국 북방 도자의 대표적인 예인 균유(鈞釉) 자기는 금대 말에서 원대로 추정되는 5점이 확인되었다. 균유 자기는 중국에서도 내몽고(內蒙古) 토성자고성(土城子古城) 교장, 황화(黄驊) 해풍진(海豐鎭), 청도(靑島) 교주(膠州) 판교진(板橋鎭), 산서성 대동시(大同市) 풍도진(馮道眞, 1258~1327) 무덤 등 북방 지역에서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26 균유 자기는 소량이지만 한반도 내에서도 성진시 등 이북 지역에서 확인된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 이남과 제주 지역에서 출토된 예가 없다.
개성, 해주 일대에서 출토된 녹유, 황유, 갈유자기는 앞서 살펴본 자주요계나 균유 자기와 달리 중국 남방 복건성 자조요(磁竈窯)에서 제작된 예가 다수 확인되었다. 두 점의 〈녹유소주자〉(덕수2309, 덕수748)는 동일한 형태로 모두 개성 일대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fig. 1). 〈녹유소주자〉의 전체적인 형태, 크기, 어깨의 연판문이나 몸체 세로선의 장식이 자조요 지주산요지(蜘蛛山窯址)에서 수집된 녹유편들과 거의 동일하다(fig. 2).27 이러한 〈녹유소주자〉는 12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일본 후쿠오카시(福岡市)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가시이(香椎) 지역의 토광묘(土壙墓)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다(fig. 3).28 〈녹유갈채병〉(본관2533)은 구연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자조요 토미암요지(土尾庵窯址)에서 제작된 갈채 장경병과 유사하다. 고리를 물고 있는 수면(獸面) 형상을 첩화기법으로 장식한 점, 목 부분에 나선형의 음각선문, 산화철 안료로 그린 덩굴문 등에서 동일 산지임을 알 수 있다(figs. 4, 5).29 〈녹유군지〉(덕수1346)도 자조요 토미암요지에서 제작된 예와 유사하다(figs. 6, 7).30 녹유 자기는 기존에 내몽고자치구 임동(林東) 남산요(南山窯)에서 제작되어 요대 도자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거나 대부분 산지가 불분명하였지만31 향후 자조요를 비롯한 광동, 복건 일대 요지 출토품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황유와 갈유자기는 호, 장경병, 매병류의 저장 용기가 많은 편이며, 남방의 자조요산 도자와 북방산 도자도 확인된다. 자조요에서는 유색이 황색조를 띠면서 철화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을 그린 도자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황유철화초문장경병〉(덕수4061)의 목부분과 유사한 황유자편이 자조요 토미암요지에서 출토되었다(figs. 8, 9).32 철화안료가 어깨부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황유철채사이호〉(덕수3495)는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데, 일본 규슈(九州) 북부나 북동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자조요산 항아리와 유사하다(fig. 10). 하나는 규슈 오이타현(大分県) 북부의 우사시(宇佐市)에서 출토되어서 1139년으로 추정되는 경통(經筒)을 담았던 〈황유철채사이호〉이다(fig. 11).33 이외에 후쿠오카현 히라노(平野)에 위치한 백산신사(白山神社)의 1109년 경통을 담았던 용기와도 매우 유사하다.34 이러한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송대 자조요 자기가 대체로 12세기 전반경에 고려에 유입되었던 상황을 알 수 있다.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구연과 어깨 일부분만 시유된 〈갈유매병〉(덕수3335, 덕수244) 두 점도 일본 하카타(博多)의 12세기 중후반 유적에서 출토된 자조요산 〈갈유매병〉과 유사하다(figs. 12, 13).35 매병에 쓰인 묵서(墨書) 명문도 ‘오강(吳綱)’으로 판독되어서, 송상의 활동과 관련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남동부에 위치하는 복건성 남부 진강(晉江) 일대에 위치한 자조요와 광동성 조주요는 송, 원대 무역 자기를 생산한 가마로 유명하지만 한국에서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자조요 자기는 철화 안료로 문양을 그린 대반(大盤) 정도만 알려져 있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황유, 갈유, 녹유로 제작된 사이호, 장경병, 주자, 사각반, 군지 등 다양한 기종이 확인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자조요산 도자의 품종과 기종은 남해 1호선 출수품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띠고 있어서 기존에 동아시아 도자 교역망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고려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또한 개성 부근에서 산서성 혼원요산으로 추정되는 도자나 남방의 자조요산 도자가 새롭게 확인되어 고려에 유입된 중국도자의 출항지와 유통 상황을 추정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36
2. 한반도 이남 및 제주 지역 사지 출토 중국 도자
고려시대 사지(寺址)는 한반도 이남 및 제주 지역까지 고르게 분포할 뿐만 아니라, 중국 도자의 출토 사례가 가장 풍부한 유적에 해당한다. 따라서 중국 도자의 지역별 유입 양상과 그 특징을 고찰하는 데 있어 적합한 분석 대상으로 판단하였다. 한반도 이남 및 제주 지역에서 발굴된 사지 25곳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를 조사하였으며, 이 중에 중국 도자의 수량이 적거나 산지 추정이 어려운 3곳을 제외하였다.37
먼저, 한반도 이남 지역에 분포한 고려시대 사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는 품종과 기종에서 전반적으로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중국 도자의 품종은 대체로 송대 11세기에서 원대 13세기경에 제작되는 경덕진요 청백자, 정요 백자, 요주요 청자, 흑유자, 광동·복건성 일대 백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table 5). 청백자는 송대 경덕진요산의 비중이 높으며, 광동·복건성산 조질 청백자가 한두 점에서 네 점 정도 소량 확인된다. 이 외에 사지에서 출토된 당·오대 월주요산 청자나 형요산 백자는 유입 시기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올라가는 경우이다(table 5).
Table 5. 〈한반도 이남 사지 출토 오대·송·금·원대 도자〉 Ceramics of the Five Dynasties, Song, Jin, and Yuan Periods Excavated from Temple Sites in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
| Temple Sites(Qty.) | Jingdezhen Qingbai Ware | Ding Ware | Yaozhou Ware | Yuezhou Ware | Black-glazed ware | Longquan Ware | Guangdong and Fujian White Wares | Others | |
|---|---|---|---|---|---|---|---|---|---|
| GyeonggiProv.[5] | Anseong Bongeobsa Temple site[16] | ○[11] | - | ○[1] | - | ○[1] | - | ○[2] | Xing Ware[1] |
| Yeoju Godalsa Temple site[37] | ○[18] | ○[4] | ○[4] | ○[1] | ○[5] | - | ○[2] | Xing Ware[3] | |
| Yeoju Wonhyangsa Temple site[9] | ○[2] | ○[1] | ○[3] | - | ○[3] | - | - | - | |
| Yongin Mabukri Temple site[7] | ○2] | ○[2] | - | - | ○[1] | - | - | Dark brown glaze[1], Blue&White Porcelain[1] | |
| Paju Hyeeumwon site[128]38 | ○[28] | ○[14] | ○[7] | - | - | - | ○[4] | Marble Ware[7] Green glaze[3] | |
| Seoul[1] | Seoul Samcheonsa Temple site[11] | ○[5] | - | ○[2] | ○[3] | ○[1] | - | - | - |
| Gangwon Prov.[2] | Gangneung Gulsansa Temple site[17] | ○[7] | ○[1] | ○[2] | ○[6] | ○[1] | - | - | - |
| Wonju Beopcheonsa Temple site[19] | ○[3] | - | - | ○[15] | - | - | ○[1] | - | |
| Chungcheong Prov.[4] | Nonsan Gaetaesa Temple site[5] | ○[5] | - | - | - | - | - | - | - |
| Boryeong Seongjusa Temple site[16] | ○[5] | - | ○[2] | ○[4] | - | - | - | Xing Ware[4] Green glaze[1] | |
| Buyeo Wangheungsa Temple site[11] | ○[4] | ○[1] | - | - | ○[2] | - | ○[1] | Unknown[3] | |
| Seosan Bowonsa Temple site[5] | ○[1] | - | - | ○[3] | - | - | ○[1] | - | |
| Gyeongsang Prov.[3] | Gyeongju Bulguksa Temple site[40] | ○[19] | ○[3] | ○[4] | ○[1] | ○[5] | - | ○[2] | Changsha Ware[3] Unknown[4] |
| Gyeongju Hwangryongsa Temple site[38] | ○[4] | ○[6] | ○[2] | ○[17] | - | - | ○[4] | Xing Ware[4] Unknown[Multi.] | |
| Sangju Seogokdong Temple site[4] | - | - | - | - | - | - | ○[4] | - | |
| Jeolla Prov.[4] | Naju Songwoldong site[3] | ○[3] | - | - | - | - | - | - | |
| Namwon Silsangsa Temple site[35] | ○[14] | ○[3] | - | ○[13] | ○[3] | - | - | Xing Ware[2] | |
| Iksan Mireuksa Temple site[267]39 | ○[100] | ○[56] | ○[22] | ○[32] | ○[3] | - | ○[1] | Xing Ware[54] Changsha Ware[1] | |
| Iksan Sajaam site[5] | ○[4] | ○[1] | - | - | - | - | - | - | |
| Jeju Prov.[3] | Beophwasa Temple site[9] | ○[2] | - | - | - | - | ○[6] | - | - |
| Sujeongsa Temple site[11] | ○[2] | - | - | - | - | ○[4] | ○[1] | Unknown[1] | |
| Wondangsa Temple site[2] | - | - | - | - | - | - | ○[2] | - | |
| Total | 237 | 92 | 49 | 95 | 25 | 10 | 25 | 89 |
개성, 해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는 품종에 관계없이 주자, 매병, 향로, 잔탁, 베개 등 기종이 매우 다양한 데 반해서 한반도 이남의 사지에서 출토되는 기종은 접시, 발, 완에 한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미륵사지의 경우에도 월주요 청자 32점과 형요 백자 54점은 모두 당대 말에서 오대로 편년되는 옥벽저(玉璧底)나 옥환저(玉環底), 옥연(玉緣)의 구연을 가진 완으로 통일신라 말인 9세기에서 고려 10세기경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백자도 북송대 기종은 10판이나 12판 화형접시에 한정되며, 11세기 말에서 12세기 1/4분기경의 유적에서 출토되어 북송 말기에 경덕진 호전요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fig. 14).40 남송대에도 〈압출양각연지어문절요접시〉, 〈음각선문절요접시〉, 〈음각동자문발〉, 〈화형발〉 등의 특정 기종만 출토되는 양상이다(fig. 15).41 북송 정요 백자도 접시나 발 종류가 주로 보이며, 요주요 청자는 소형 화형접시와 완류, 흑유자기는 완류만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figs. 16, 17, 18).





많은 수량의 중국 도자가 출토된 미륵사지도 경덕진요 청백자편 112여 점, 정요 백자편 62점, 형요[또는 정요] 백자완편 56점, 요주요 청자편 23점, 월주요 청자편 35점, 흑유자기편 3점으로 품종 구성이 다른 사지와 동일하다.42 기종을 살펴보면, 경덕진요 청백자는 완편 8점, 발편 16점, 절요접시편 50점, 10판에서 12판의 화형접시편 24점, 압출로 찍은 화형접시편 2점이다. 정요는 완편 9점, 발편 5점, 잔편 5점, 접시편 25점으로 확인된다. 미륵사지와 같이 대량의 중국도자가 출토된 사지에서도 제한된 품종의 완, 발, 접시만 확인되는 점을 볼 때, 한반도 이남 지역은 개성, 해주와 달리 특정 품종의 몇몇 기종만 유통된 것으로 판단된다. 품종과 기종으로 볼 때, 사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는 모두 개성 부근에서 적지 않은 수량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개성으로 유입된 중국 도자 중에 일부 기종만 선별적으로 한반도 이남으로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에서 발굴 조사된 법화사지, 수정사지, 원당사지 등 세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용천요 청자, 경덕진요 청백자, 광동성·복건성 일대 조질 백자가 출토되었다(table 5). 1270년을 전후한 시기에 건축된 제주 항파두리 내성(內城) 유적에서도 용천요 청자 42점, 경덕진요 청백자 18점이 출토되었다.43 제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는 남송 13세기에서 원대 초의 용천요 청자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개성 부근에서 확인된 소량을 제외하고 거의 출토되지 않는 한반도 내륙의 양상과 큰 차이를 보인다.44 육지와 달리 제주도에서 용천요 청자가 출토되는 배경에는 송과 일본 간의 무역로 상에 위치한 제주도의 지리적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제주도 서쪽 해안의 신창리 해역에서 중국도자 1,714점이 출수되었고, 그 중에 97%가 용천요 청자였다. 제주도는 남송에서 원대까지 중국 영파에서 출발한 상선이 일본 하카타로 가는 중에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았다.45 유적이나 해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의 품종은 무역선의 출항지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점에 근거할 때, 제주 지역과 한반도 내륙으로 유입된 중국 도자의 출항지는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고려의 중심 도시였던 개성이나 해주 일대에서는 중국 북방 및 남방 지역에서 제작된 도자가 함께 출토되는 반면, 한반도 이남에서는 경덕진요 청백자, 요주요 청자, 정요 백자, 흑유자 등 동일한 품종과 기종이 세트를 이루듯 출토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사찰에서 특정 품종과 기종만을 선별적으로 주문하였거나, 개성으로 유입된 중국도자 중 일부만이 남부 지역으로 유통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주도는 개성, 해주와 한반도 이남에서 거의 출토되지 않는 다량의 용천요 청자와 함께 경덕진요 청백자가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처럼 중국 도자의 산지·기종·품종별 수량이 지역에 따라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점은 당시 중국 도자가 출항지를 추정하는데 주요한 단서가 된다.
Ⅳ. 중국 도자의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
Ⅳ장에서는 Ⅲ장에서 살펴본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의 품종과 산지 등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려에 유입된 중국 도자의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고려의 대중국 교류는 시기별로 사대 관계를 맺은 나라와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중심으로 문헌 기록에 근거하여 연구되어 왔다. 고려와 중국과의 교역은 주로 천주(泉州) 등 남방 출신 송상(宋商)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항로는 주로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연구되어 왔다.46고려의 대중국 항로는 대체로 10세기에서 11세기 중엽까지 산동성 등주(登州)나 밀주(密州)에서 출발하여 황해를 횡단한 뒤 옹진(甕津)에 도착하는 북로(北路)를 이용하며, 1073년 이후에는 명주(明州, 현 寧波)에서 출발하여 흑산도를 거쳐 벽란도로 입항하는 남로(南路), 즉 동중국해 사단항로(斜斷航路)를 이용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47 또한 문헌 기록과 한반도 근해에서 출수된 송·원대 도자가 주로 경덕진요, 용천요, 복건·광동 지역 등에서 생산된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도자들이 송·원대 중국 동남해안의 주요 항구였던 명주에서 출발하여 한반도 서남부를 거쳐 하카타(博多)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되었다.48
그렇다면 문헌 기록과 한반도 근해 출수 도자에 근거한 주장처럼,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도 명주항을 출발하여 한반도 서남해안을 경유한 뒤 예성항으로 입항했을까? 실제 한반도 서남부 근해에서 인양된 중국 도자는 개성·해주를 비롯한 한반도 이남 지역의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와 품종, 기종, 수량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중국 항주나 영파 출토 고려청자를 근거로 남로를 이용한 점을 강조하지만 최근 북경의 금대 중도(中都) 유적에서 다량의 12세기에서 14세기경의 고려청자가 출토되었다.49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고려에 유입된 중국 도자의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를 추정하는데 중국 동북 및 동남 연해 지역의 항구 유적과 침몰선에서 확인된 도자의 산지와 품종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개성, 해주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의 제작 시기는 10세기 후반부터 14세기에 걸쳐 분포하지만, 대체로 11세기 후반에서 13세기경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시기는 중국의 북송대 중·말기에서 금, 남송, 원대에 해당하며, 당시 중국의 주요 항구는 하북성, 산동성 일대의 동북 해안권과 절강성·복건성·광동성 일대의 동남 해안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중국 동북 해안권에 위치한 항구 유적은 하북성 황화(黃驊) 해풍진(海豐鎭), 간리(墾利) 해북(海北), 산동성 봉래수성(蓬萊水城), 청도(靑島) 교주(胶州) 판교진(板橋鎭), 일조시(日照市) 남산구(嵐山區) 신화촌(新華村) 등이 있다.50 동남 해안권에서 발견된 항구 유적이나 침몰선은 절강성 태창(太倉) 번촌경(樊村涇), 상해 청룡진(靑龍鎭), 복건성 천주 후저항(后渚港), 장주(漳州) 반양초(半洋礁), 성배서(聖杯嶼), 광동성 남해(南海) 1호선 등이다.
중국 동북해안과 동남해안에 위치한 항구 유적이나 침몰선에서 발견되는 송, 금, 원대 도자는 산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동북해안에 위치한 황화 해풍진은 중국 북방의 정요, 혼원요, 자주요계, 균요, 요주요와 남방의 용천요, 경덕진요의 도자들이 발견되었다.51 간리 해북, 청도 교주 판교진 항구 유적은 자주요계, 균요계, 정요, 치박요, 요주요 등의 북방 도자와 건요, 길주요, 경덕진요, 용천요 등의 남방 도자가 함께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52 동남해안권의 항구 유적이나 침몰선에서는 절강성, 강서성, 강소성, 복건성, 광동성 등 양자강 이남 지역에 위치한 가마에서 제작된 도자만 출토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53
황화 해풍진, 간리 해북, 판교진 항구 유적에서 출토된 도자는 북송 중말기에서 금대이거나 동시기 남송대의 것이고, 일부 원대로 추정되는데 대체로 금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원대에 쇠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금대 정요나 자주요계 도자가 개성·해주 일대에서 확인된 도자와 유사하다는 점이 이미 지적되었다.54 황화 해풍진 및 청도 판교진 유적의 출토품을 개성, 해주 출토품과 면밀하게 비교하면, 자주요계 요지의 백유·백지흑화·홍록채·흑유, 음각 및 압출기법의 정요 백자류, 요주요 청자, 균요계 자기, 용천요 청자, 경덕진요 청백자, 길주요 흑유자 등 송·금·원대에 걸친 자기에서 유사한 품종 및 기종 구성이 확인된다(figs. 19, 20). 결국 Ⅲ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성·해주 일대에서 송·금·원대의 북방 및 남방 요지의 생산품이 함께 출토된다는 사실은 해당 도자의 출항지와 해상 교역로를 추정하는데 중요가 단서가 된다. 따라서 개성·해주에 유입된 중국 도자의 출항지는 산동성이나 하북성에 위치한 항구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산동성 봉래수성 유적에서 고려말의 선박이 발견된 점도 이러한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55


중국 동북 해안권의 항구에서 남방 요지의 자기들이 다량 출토되는 것은 연해 항구로서, 대외 무역과 남방 지역 항구들과 연결되는 중계항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판교진이 위치한 밀주(密州)에 1088년에 시박사(市舶使)가 설치되었고, 금대에는 남송과 교역할 수 있는 각장(榷場)이 설치되어서 남·북방 지역의 다양한 도자가 유입되었다.56 산동성 일조시 신화촌(新華村) 항구 유적에서도 북송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에 경덕진 호전요지(湖田窯址)에서 제작된 10판, 12판의 청백자 화형접시가 출토되었다.57 이러한 유형의 화형접시는 개성 부근에서 발견된 20여 점을 비롯하여 한반도 이남의 전국 사지에서도 출토되는 대표적인 기종이다(fig. 14).58 경덕진요 청백자를 비롯한 남방 지역의 도자는 북송대부터 연안 항로를 따라서 산동반도의 주요 항구로 운송되었고, 다시 해안을 따라서 하북성 해풍진이나 해북 항구로 운송되었다.59 다양한 남방 지역 도자가 동북해안의 항구에서 다량 출토되는 반면에 동남해안의 항구 유적에서 자주요계, 균요계, 혼원요 등의 북방 도자가 출토된 예는 매우 드물다. 다만 금대에는 정요 백자가 해풍진과 해북 항구로 운송된 후에 다시 산동반도를 거쳐 최종적으로 남송 지역에 유통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동성의 판교진이 위치한 밀주는 송대부터 광동, 복건, 회절로(淮浙路)의 상인과 경동(京東, 현 산동성 일대), 하북삼로(河北三路, 현 하북성 동부 및 산동성 북부)의 상인이 만나 교역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천주를 비롯한 광동·복건에서 온 해상들이 밀주에서 수개월 동안 체재하면서 물건을 팔았다.60 송, 금, 원대에 연안 교역 양상을 배경으로, 하북성과 산동성 일대 항구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와 개성, 해주 일대 출토품과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광동·복건·절강 등 남방 지역의 해상들이 산동반도나 하북성의 항구를 출발한 후에 황해를 횡단하여 예성항에 입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북로를 이용하여 예성항에 입항할 때 거쳐야 하는 해주만 입구에 위치한 용매도에서 송·원대 도자가 다량 출토된 사실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fig. 21).

남송 말기에서 원대 용천요 청자는 개성 부근에서 매우 소량 확인되고 제주 해역과 제주 내 유적에서 다량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 원대 용천요 청자는 구강(甌江)을 따라 온주(溫州)까지 운반된 뒤 태창(太倉)에서 환적하여 해선(海船)으로 북상하는 경로를 취하였다. 태창에서 연해 항로를 따라서 산동성 교주 판교진, 등주(현 봉래), 직고(直沽, 현 천진) 일대까지 운송되었다.61 개성 부근에서 출토되는 용천요 청자는 기종 구성이 산동성 판교진 항구 유적 출토품과 유사하지만 소량이라는 점에서 중국 남·북방 요지의 산품이 모두 모이는 중국 동북해안의 항구에서 출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용천요 청자가 다량 출토되는 제주의 경우, 태창을 비롯한 영파, 상해, 복주 등 용천요 청자의 주요 집산지인 동남연해 항구에서 출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fig. 21).
한반도 이남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의 유통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한반도 남부의 사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의 품종과 기종은 개성·해주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는 것이다. 한반도 이남의 사찰에서 모두 동일한 품종과 기종의 중국 도자가 세트를 이루어 사용된 점을 고려할 때, 개성이나 해주로 유입된 중국 도자 중에 사찰의 선호도가 높았던 백자류, 청자류, 흑유자 등의 품종과 완, 접시 등의 특정 기종만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고려시대 사원의 경제·사회적 기능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고려시대 사원은 전국의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여 상인과 여행자에게 숙박 편의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역의 중심지로서 불교 행사에 수천 명의 인원이 장기간 운집하는 과정에서 활발한 거래와 교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62
Ⅴ. 맺음말
본 연구는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약 2,000여 점의 중국 도자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산지, 품종, 기종 및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지역별 유통 양상과 그에 따른 해상 교역로를 실물 자료에 기반하여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국내외 박물관 소장품과 한반도 내 유적 출토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 문헌 중심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첫째, 지역별로 뚜렷한 출토 양상의 차이가 확인되었다. 정치·행정 중심지였던 개성과 군사적 요충지였던 해주 일대에서는 송·금·원대 중국 북방의 자주요계, 정요, 균요 등과 남방의 경덕진요, 자조요, 용천요 등 중국 남·북방의 다양한 도자가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반면 한반도 이남의 사지에서는 경덕진요 청백자, 정요 백자, 요주요 청자, 흑유완 등 특정 품종과 기종만이 세트로 출토되는 선별적 소비 양상을 보였다. 한편, 제주 지역은 내륙과 달리 용천요 청자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여 독자적인 유통망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도자의 산지 분석을 통해 고려의 대중국 해상 교역로와 출항지를 재구성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주로 문헌기록에 기반하여, 11세기 이후에는 영파를 출항하여 남로를 이용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중국 도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 11세기 이후에도 산동성이나 하북성 항구를 출발하여 황해를 횡단하는 북로(北路)가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개성·해주 출토품이 중국 동북 해안의 항구 유적인 해풍진, 판교진 등지의 출토품과 유사하게 중국 북방 및 남방 요지의 산품이 모두 확인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특히 북로를 이용할 때 주요 거점지인 해주 일대와 용매도에서 다량의 송·원대 도자가 출토된 점도 중요한 근거임을 지적하였다. 또한 사지 출토 중국 도자를 분석한 결과, 해주나 개성으로 유입된 중국 도자 중에 일부 품종과 기종이 선별적으로 한반도 이남의 사찰로 유통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고려의 도자 문화는 고려청자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의 다양한 요지에서 생산된 도자를 수용하고 향유한 사용자 중심의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고려시대 중국 도자의 유입과 유통은 정치·경제적 중심지인 개성·해주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해상 교역망 속에서 고려가 차지한 위상과 역할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