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The Throat-Bell Container (huryŏngt’ong) Recovered from the Wooden Seated Vairocana Buddha of Early Chosŏn in Hainsa
해인사
Published: January 2022 · No. 316 · pp. 5-37
Full Text
Abstract
해인사 비로전에는 2존의 통일신라 9세기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내부에서 거의 유사한 1490년에 안립한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오보병을 후령통에 안립하고 그 위에 사리합(통)과 심주를 둔 후 원경으로 덮는 방식과 뚜껑에 진심종자를 쓰던 형식은, 고려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륜종자를 오보병에 쓰고 오보병을 오경의 형태로 제작한 점, 팔엽연화봉으로 오보병을 덮은 점, 오륜종자 혹은 사방주를 쓴 황초폭자를 도입한 점, 청초주서에 원문을 쓰도록 한 점 등은 새로운 혁신이었다. 또한 긴후혈을 갖춘 후령통은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처음 시작되어 해인사 복장물에서 정연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중요한 점은 그 제작 배경에 교리와 사상에 밝으면서 당시 불사를 이끈 신미대사와 학조대사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br* 용천사판 『조상경』 (1575)과 해인사 필사본 『聖像塑畵腹藏儀』는 복장물의 구성과 관련된 중요한 경전이다. 특히 복장물 가운데 오시화, 오채번, 오산개는 『묘길상대교왕경』의 영향으로 16세기 용천사판 『조상경』의 출간 즈음 복장물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1490년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복장물 안립 형식인 후령통 내부에 오보병을 안립하고, 팔엽개, 양면원경을 두는 방식은 16세기 정리된 용천사판 『조상경』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후령통은 조선시대 후령통의 전형적 범본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