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Significance and Function of Jo Huiryong’s Painting in Exile to Imja Island
국립고궁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20 · No. 305 · pp. 79-107
Full Text
Abstract
1851년 예송 논쟁에 휘말려 임자도로 유배된 조희룡은 소식에 대한 崇慕를 강화하고 자신의 처지를 소식의 삶에 동일시하며 유배의 절망과 울분을 예술로 극복하고자 했다. 특히, 화가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고히 하며 회화 창작에 몰두하였다. 유배시절 회화는 무료함과 울적한 심사를 寫出하는 수단이었다. “○蘇庵에서 遊戲 삼아 그린 첩”이란 의미의 원 제첨이 있는 오구라콜렉션 소장 『석난도첩』과 “울적한 마음을 쏟아 놓은” 개인소장 <황산냉운도>는 조희룡의 답답함과 울분이 사출된 狂塗亂抹의 화경을 잘 보여준다. 한편, 대나무로 둘러싸인 유배지 거처의 환경은 묵죽 창작에 영향을 끼쳐 조희룡 스스로 신위를 능가한다고 자부심을 피력할 정도의 완숙한 묵죽 화풍을 이룩할 수 있었다. 유배시절 조희룡에게 회화 창작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로도 역할 하였다. 회화는 멀리 떨어진 지인들과의 우정을 돈독히 하고 유배지에서의 삶과 심사, 그리고 바람을 전달하는 전령이었다. 또한, 나기의 청으로 제작한 《홍백매도》의 예처럼 지인에게 그려 준 그림은 소통의 수단을 넘어 감상자들에게 시 창작의 대상으로 의도 되었으며, 이렇게 지어진 시는 조희룡 작품의 의미를 확장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