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Characteristics and Stylistic Examination of the Stele of National Preceptor Jingak Wonjotap at Wollamsa Temple Site
양산시립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8 · No. 297 · pp. 93-117
Full Text
Abstract
탑비는 국사나 왕사에게만 허락되는 일종의 기념비적인 조형물이다. 따라서 탑비 건립에는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하고 또 많은 제자 승려들과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재가진자들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했다. 결국 탑비는 당대 최고의 기술이 나타나는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br* 본고에서 언급한 진각국사(1178-1234) 원조탑비는 개인의 행장을 담은 탑비로서는 2가지 점에서 이례적이다. 첫째, 탑과 비의 건립장소가 다를 뿐 아니라 매우 원거리에 위치한 점이다. 둘째 탑이 건립된 이후 1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고 무엇보다 고려 중기 이후 급격히 쇠락하는 가운데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이다.*br* 진각국사 탑비는 고려탑비사에서 가장 변화가 두드러졌던 13세기 중엽, 즉 1250년에 건립되었다. 이 때는 龜趺, 塔碑, 螭首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탑비형식이 해체되고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각국사비는 13세기 이후에 귀부로는 가장 위엄있고 훌륭한 조각양식을 지녀 전성기의 기량을 다시 회복한 작품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같은 시기에 건립된 백련사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의 탑비 건립이 큰 자극제가 되었다. 또한 탑비 건립에 참여한 기진자 200여명의 지원과 분업화된 작업환경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br* 조형적으로는 다른 고려시대 귀부에서 보이지 않는 용두의 S자형 곡선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호남지역의 전통을 계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비좌의 일월상문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br* 귀부에 비신을 올리는 비석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출현하여 당대에 크게 유행하였고, 우리나라는 태종무열왕비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후 9세기 선종불교의 유행과 함께 한국형 탑비의 성립을 이루며 발전해 간다. 진각국사비는 신라하대에 성립하여 고려시대중기까지 제작된 한국형 귀부의 사실상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향후 추가적인 자료 발굴을 통하여 현재 결실된 지붕돌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고려탑비사의 완벽한 양식적 계보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