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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Perception of Joseon White Porcelain in Modern Japan Through the 'Akikusa-de' Style

타시로 유이치로

서울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7 · No. 294 · pp. 16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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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秋草手’는 가는 선으로 잎과 꽃을 표현한 草花 문양이 시문된 18세기 조선청화백자를 일컫는 일본식 개념이다. 肥塚良三은 柳宗悅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이 秋草手 개념이 형성된 시기를 추정한 바 있는데 柳宗悅이 문양을 秋草에 비유해서 깊이 주목하고 높이 평가한 글은 확인할 수 없다. 즉 秋草手 개념은 柳宗悅과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본 연구는 秋草手 개념이 일본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근대 일본의 조선백자에 대한 인식을 고찰해 보고 이를 통해 秋草手 개념 형성에 영향을 남긴 ‘動因’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br* 1910-20년대 조선백자에 대한 인식은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1931년 12월 및 1932년 5월 靑山二郞이 기획·개최한 朝鮮工藝品展覽會를 필두로 미술 시장에서 조선백자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학술적인 연구 성과의 발표와 한국인 수집가의 본격적인 시장 참여라는 요소가 얽히면서 ‘조선백자 붐’현상이 전개되었다. 이 현상을 통해 조선백자, 특히 秋草手 작품의 가격이 상승하였다. 1931, 32년에 100圓 전후로 매매된 항아리가 1940년에는 1,800圓으로 매매되거나, 1935년 즈음에 1,500圓 정도로 매매된 팔각항아리와 거의 동일한 작품이 1941년에는 15,000圓에 매매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br* 이러한 가격 상승을 ‘動因’으로 점차 秋草手 작품들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었다. 1940년 11월 京城美術俱樂部 경매목록이나 1941년 9월 內藤貧狂의 글 「鑑陶圖說」을 비롯해 현재와 같은 의미로 秋草와 연결해 살펴보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또한 1942년 7월 田中豊太郞이 간행한 『李朝陶磁譜』에는 ‘秋草手’라는 용어까지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백자의 문양을 秋草에 비유하는 개념이 형성된 ‘動因’으로 당시 활발해진 일본적 미의식에 대한 談論을 지적할 수 있다. 이 談論을 기반으로 한 당시 잡지 단행본에서 적극적으로 秋草手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한 상황에 부합해서 이와 같은 개념이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秋草手 작품은 마치 16세기 高麗茶碗에 ‘狂言袴’의 이미지가 적용된 것처럼 일본적 미의식으로 해석되었는데 여기서 적용된 것이 바로 일본에 특유한 秋草 이미지이다. 1942년에 神奈川縣에서 출토된 일본 陶器 항아리가 ‘秋草文壺’라 명명된 것과 같은 구조로 조선백자 내에서도 秋草手 개념이 형성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고찰을 통해 필자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조선백자의 秋草手 개념에 영향을 남긴 ‘動因’으로서 1930년대 이후 미술시장의 동향과 문화국수주의를 지적하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한다.*br*
Keywords: 미술 시장(Art Market)문화국수주의(Cultural Nationalism)조선백자(White Porcelain in Joseo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