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Spatial Staging of Ritual Food Tables at Court Banquets in the Korean Empire Period and Their Political Implications
이화여자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5 · No. 287 · pp. 57-81
Full Text
Abstract
대한제국기 오례의 하나인 예연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의례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인 의례음식을 통해 살펴보았다. 대한제국기 거행된 4번의 예연 중 3번이 외연과 내연이 모두 구성된 규모가 큰 공식적인 진연이었다. 외연은 19세기 조선시대 가례 연향이 국가적 차원에서 왕실 가족 차원으로 축소된 시기에는 거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대한제국전후 고종이 외연을 되살린 것 자체가 왕권 강화를 위한 시도였음을 의미한다.*br* 대한제국기 진연에서 주빈의 의례음식상은 이전 조선시대의 연향에 비해 가장 의례음식상의 수가 많으며, 각 음식상에 올라가는 찬품의 수가 많았고, 또한 고임의 높이 또한 높았다. 그러나 이렇게 주빈의 의례음식상이 극대화된 것은 황제국으로 전환하기 직전인 1892년 임진년 진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때 19세기 내연에서는 사라졌던 대탁을 영조대의 예연을 전례로 되살리면서 더욱더 주빈의 앞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br* 대한제국기 황제국으로의 전환과 맞물리는 의례음식의 변화는 소선 · 대선 · 염수 등 의례적 성격이 강한 상에서 그 분량이 2배로 증가한 것이며, 이 음식의 분량 변화는 황제국으로의 기물 색 변화와 맞물려 예연의 공간에 등장함으로서 의례의 진행 매개체로서 시각적 역할을 수행하였다.*br* 따라서 대한제국 이전 고종은 개항 후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드러내고, 대내적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외연을 되살리고, 오례의 규정과 상대적으로 무관한 의례음식을 극대화시켰으나, 명성황후의 시해와 갑오개혁 등으로 대내외적으로 왕권이 위축되자 기존의 제후국에서 벗어나 황제국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1892년에 이미 의례음식에 고종은 정치적 의도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연의 부활과 더불어 재등장한 의례음식상인 대탁을 영조대의 전례를 따라 고종이 지향하고자한 바를 확인할 수 있다. 의례음식은 당대 소모되어 남아있지 않지만, 시대성을 담보하고 있고 또한 연향공간에서 다른 기물과 더불어 위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시각 매개체로 작용하였음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