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n Examination of Seokchon Yun Yong-gu's (1853–1939) Six-Panel Folding Screen of Landscapes, Flowers, and Birds
高麗大學校
Published: January 2014 · No. 283 · 284 · pp. 143-171
Full Text
Abstract
石村 尹用求(1853∼1939)는 南寧尉 尹宜善의 아들로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관료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隱逸을 추구하였으며, 1894년부터 이를 실행에 옮겼다. 1907년 이후 윤용구는 장위산 기슭에 머물며 書畵에 전념한다. 그는 開化期 서울畵壇의 書畵家이자 주요 後援者로서 當代 書畵史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는 당대 화단에서 유행한 畵目의 형성과 성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br* 윤용구는 개성적 화풍을 구사한 문인화가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세계를 정립하였으며, 본인이 형성한 화풍을 반복적으로 구사하였다. 이는 그가 근대기에 새롭게 변화된 화단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점은 南啓宇(1811~1890)와 洪世燮(1832~1884)의 작품세계에서도 엿보이는 것으로서, 개화기 문인화가로서의 윤용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br* 윤용구는 山水와 四君子, 怪石을 주로 그렸으며, 花鳥, 草蟲, 魚蟹, 花卉, 器皿折枝 등의 작품도 적지 않게 제작하였다. ≪山水花鳥六幅屛風≫은 24점의 작품을 병풍 형식으로 粧潢한 것이며, 윤용구가 다룬 모든 화목이 망라되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또한 각각의 작품 모두 필력이 뛰어나 윤용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병풍의 형식은 여러 畵目을 각기 다른 화폭에 담아 병풍으로 꾸민 雜畵屛과 관련이 깊다. ≪山水花鳥六幅屛風≫에 나타난 윤용구 畵風의 특징은 윤용구의 다른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 중 상당수의 작품과 같은 그림이 반복적으로 제작되었다. 즉, ≪山水花鳥六幅屛風≫에 대한 考察은 당대에 폭발적으로 유행한 雜畵屛의 형성 과정의 일례를 제시하고, 개화기 대표적 후원자이자 서화가였던 윤용구의 작품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