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Imitation and Dissemination of 'Kim Hong-do Genre Paintings' During the Open Port Period
한국학중앙연구원
Published: January 2014 · No. 283 · 284 · pp. 115-142
Full Text
Abstract
이 논문에서는 개항기 서양인들이 구입했던 김홍도의 <행려풍속도>와 ≪단원풍속도첩≫의 모사본을 중심으로 당시 ‘김홍도 풍속화’ 제작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개항기 시정에서 제작된 ≪단원풍속도첩≫류와 <행려풍속도>류의 작가 표기 방식이 상이하게 나타났다. <행려풍속도>류의 그림들은 ‘김홍도’의 이름으로 제작되었던 반면에 ≪단원풍속도첩≫류의 그림들은 모사한 화가의 이름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19세기 말 수요자의 다양성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여겨진다. 김홍도의 명성이 19세기까지 이어졌던 국내 그림 시장에서 ‘김홍도’라는 이름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기메박물관 <사계풍속도>나 국립중앙박물관의 <풍속도>가 김홍도의 이름으로 제작되었던 것은 김홍도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던 국내 수요자들을 위해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모사한 그림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린, 즉 한진우, 문혜산 등의 이름으로 제작된 화첩은 김홍도의 이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서양인들에게 판매되었던 것이다.*br* 개항기 수요자의 다양성에 오는 특징은 소재의 선택에도 나타난다. ‘김홍도’의 이름으로 제작된 기메박물관 <사계풍속도>의 경우 김홍도의 <행려풍속도>의 일부 장면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당시 국내 수요자의 취향에 맞추어 ‘선비와 기생의 풍류’라는 도시 유흥의 주제로 병풍을 재구성하였다. 반면 대영박물관 ≪풍속화첩≫의 경우는 인물의 옷주름과 잘못 그려진 손의 표현까지 ≪단원풍속도첩≫을 그대로 모사하였는데, 이는 작품의 수준보다는 조선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 풍속을 담은 소재 자체에 관심을 두었던 서양인들이 민족학적 수집품으로 선호하였던 것이다.*br*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사본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시정에 유통되고 있었던 ‘김홍도 풍속화’ 화본의 존재이다. 즉 ‘김홍도 풍속화’ 화본이 개항기 궁중에서뿐만 아니라 시정에서도 유통되어 많은 모사작들이 제작되고 있었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개항기 시정화단에서는 국내외 수요자들의 취향에 맞추어 도시유흥의 풍속장면을 첨가하기도 하고 서민들의 생활 장면들로 구성된 ≪단원풍속도첩≫과 <행려풍속도> 등이 모사되어 판매되었던 것이다. 화본의 유통은 곧 시정에서 ‘김홍도 풍속화’가 다량 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개항기의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김홍도 풍속화가’가 국내뿐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판매?확산되었다.*br* 개항기 유통되었던 화본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선행 연구자들이 지적해온 많은 문제점과 19세기 후반 그림에서 사용되었던 이중윤곽선묘법 양식이 보이는 ≪단원풍속도첩≫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또한 진위작의 여부를 떠나 개항기 궁중과 시정에서 함께 공유했던 화본으로서 ≪단원풍속도첩≫의 중요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