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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The Introduction and Background of Japanese Mirrors in the Joseon Period

권주영

경남문화재연구원

Published: January 2014 · No. 283 · 284 · pp. 8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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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왜경이란 和樣으로 장식한 일본의 거울을 말하는데 일본에서는 和鏡이라 부른다. 한국 소재 왜경의 사례는 현재까지 77점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동경은 22점이고 나머지는 국내 박물관 및 사찰의 소장품이다.*br* 본 논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왜경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조선시대에 유입된 배경 그리고 유통의 문제와 그 배경을 다루고자 한다. 먼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왜경을 분석하여 이를 일본의 紀年銘鏡과 비교해 본 결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특히 17~18세기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왜경의 형식도 다양한 문양과 형태를 보인다.*br* 조선시대 왜경이 유입된 경로는 『朝鮮王朝實錄』, 『通信使謄錄』, 『增正交隣志』, 『海行摠載』등의 문헌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왜경의 유입경로는 조·일 사절단의 예단으로서 조공무역에 의한 경로와 연례팔송사를 대표하는 공무역을 통한 경로, 차왜 및 당시 관리들 간의 사사로운 선물교환을 통해 이루어진 경로 등이 있다. 문헌조사 결과 왜경은 차왜가 조선에 예물로 가져온 것이 주된 경로로 판단되며 이들 차왜의 활동시기는 조선시대 왜경이 급증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왜경은 조선통신사의 예물 증답품 중 하나로 채택할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공예품으로 인식되었다.*br* 조선시대에는 국내 銅製 工藝品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꾸준하게 銀과 銅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淸錢의 경우 국내 鑄錢所로 옮겨져 常平通寶 제작의 원료로 사용된 예가 있다. 그러나 왜경은 서울 청진동유적과 김천 문당동 유적, 임서선생 부인 묘의 출토 예를 통해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사찰의 불교의식구로 활용되어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문헌기록으로도 왜경은 왕실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중국으로의 연행 시 예물로 재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유통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조선시대 관장제도의 붕괴에 따른 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체제의 발달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왜경의 가격 및 선호도 등 여러 방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br* 한편 왜경을 소장하고 있는 사찰의 위치가 조선통신사의 경로와 일치하는 점도 주목된다. 최근 조사된 부산 해련사의 床卓의 밑면에서 1811년의 신미사행 당시 통신사 일행이 사찰을 방문하였고 그 때 사용되었던 기물임이 확인되는 墨書가 발견된 바 있다. 이는 당시 사찰이 한일 교류사를 대표하는 조선통신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아울러 조선시대 왜경이 유통되는 또 다른 배경 중 하나라 생각된다.
Keywords: 왜경분묘거울봉래문경병경조일무역차왜통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