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Imjeon Jo Jeong-gyu's Paintings of Fish and Crabs
경기도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4 · No. 281 · pp. 135-163
Full Text
Abstract
琳田 趙廷奎(1791~1868 이후)는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로서 산수·인물ㆍ화조에 모두 능했고 특히 어해도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두 번의 어진 제작에 참여할 만큼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던 화가였지만 도화서 소속의 화원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근대 화단을 이끌었던 손자 趙錫晉(1853~1920)에게 그림을 가르쳐 회화사적 의의도 적지 않다.*br* 조정규 어해도의 특징은 기존의 게, 새우, 조개와 같은 소재를 꾸준히 그리면서 群魚圖, 雙魚圖, 躍鯉圖처럼 전통 어해도 양식의 도상까지 화폭에 담았다는 점이다. 그 중 쌍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서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길상의 의미와 맥락을 같이 한다. 더불어 복어, 우럭, 숭어 같은 물고기의 명칭을 동음이의어로 풀어내 福祿壽를 뜻하는 ‘三福’의 의미를 이미지로 도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은 다양한 수생동물들을 핍진하게 묘사한 張漢宗(1768~1815)의 寫生圖報式 어해도와 구분되는 중요한 특징이다.*br* 그 중 〈어해도〉 병풍 그림 3점은 모두 이전의 어해도와 달리 각 폭에 꽃나무를 주요 소재로 배치하여 병풍의 장식 기능을 높이고 있다. 이 3점의 병풍 그림은 10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제작되었지만 소재와 구성이 거의 비슷하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이는 조정규가 화본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계속 그림 주문에 응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일정한 도안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작품의*br* 성이 변하지 않고 그려졌다는 사실은 조정규 〈어해도〉 병풍의 수요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br* 조정규 어해도는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李漢喆(1812~1893 이후)은 조정규 어해도와 거의 비슷한 소재와 구도의 작품을 그렸으며,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조석진은 물고기 비늘을 묘사하는 필법까지 조정규를 따르고 있다. 조정규 〈어해도〉 병풍 그림은 길상적 성격이 강하고 장식적 요소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19세기에 크게 환영받은 듯하다. 서민 화가들에 의해 제작된 조정규 양식의 민화 어해도들도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조정규 어해도는 조선시대 어해도의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민화 어해도의 종류와 형식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과도기의 회화사 일면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