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Some Problems Concerning the Disappearance of the Yue Kilns
Published: January 2013 · No. 279·280 · pp. 347-370
Full Text
Abstract
越窯는 後漢代에서 宋代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秘色瓷를 생산한 窯場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월요가 남송시기에 접어든 이후의 어느 때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본 연구는 월요의 소멸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각별히 그 구체적인 시기와 원인을 검토한 것이다.*br* 이제까지 많은 연구자들은 월요의 소멸시기와 관련하여, 『雲麓漫?』와 『坦齋筆衡』에 보이는 월요와 관련된 기록을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전자를 신뢰하는 연구자들은 남송 중엽에, 후자를 신뢰하는 연구자들은 남송 초기에 월요가 소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기록들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그것들이 월요의 소멸시기를 파악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고학적 자료에 의거할 경우, 그 소멸시기는 남송 중엽경일 가능성이 크다.*br* 한편, 월요 소멸의 원인에 대한 많은 견해가 있지만, 그 대부분은 결과론적인 해석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보기 힘들다. 월요 소멸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월요의 소멸을 瓷器의 需要와 供給의 구조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시 월요가 다른 많은 窯場들과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월요가 소멸에 이르게 된 본질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釉藥과 胎土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TiO2 함량이 비교적 높은 월요의 유약은 당시 사림들이 선호하던 淡靑綠色 계통의 釉色을 얻기 힘든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Al2O3의 함량이 낮은 태토도 高溫燒成時 抗變形力이 낮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략 五代時期까지 월요는 각각 裝燒工藝와 成形技法의 개선을 통하여 유약과 태토의 결점을 어는 정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송시기에 접어들어 요업환경이 변화되면서 그러한 결점들로 말미암은 문제점들이 점차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러한 결점이 없는 새로운 유약과 태토를 개발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요장이 위치한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노정된 문제점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월요는 다른 요장들과의 경쟁구도에서 점점 뒤쳐져서 북송 후기에는 이미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쇠락하였으며, 결국 남송 중엽경에 이르러 소멸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