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the Iconography of Ucchusma (Yejeokkeumsang) in Late Joseon
동국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3 · No. 279·280 · pp. 239-266
Full Text
Abstract
조선 후기 불화에 나타난 예적금강상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전승되는 예적금강상과는 확연한 차별이 있으며, 『楞嚴經』과 『法術靈要門』을 바탕으로 조선의 독자적 도상으로 표현되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本稿는 예적금강상이 중국·일본과는 다른 과정으로 수용되고 다양하게 변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br* 조선 후기 예적금강상의 嚆矢가 되는 한국미술박물관本은 『法術靈要門』의 성격뿐만 아니라 『楞嚴經』에서 불의 성격을 강조한 火頭金剛까지 포함한 다각적인 성격의 예적금강 신앙이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도상적으로는 佛巖寺版 『釋氏源流應化事跡』을 통해 중국에서 전승되던 예적금강의 자세를 수용하고, 전통적인 多臂像인 천수관음의 지물에 영향을 받았다. 아울러 수화사 印潭이 일본불교를 접했던 점은 당시로는 매우 드문 일로 한국미술박물관本이 일본 천수관음상의 玉環 지물에 영향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br* 한편 한국미술박물관本과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한 도상의 수용양상이 이후의 모든 작품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도상의 변용이 나타나는 조선 후기 예적금강상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br* 첫째 海印寺本의 예적금강상은 같은 지역에서 전승되던 대자재천 도상의 일부를 수용하고 『楞嚴經』을 바탕으로 조선의 독자적 도상으로 변용되었다.*br* 둘째 奉印寺本은 의식집인 福住庵本 『要集』에서 묘사하고 있는 도상적 특징을 시각화 하였다.*br* 셋째 龍株寺本은 전통적인 예적금강의 도상과 달리 공포스런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1873년 중국의 金陵刻經處에서 인쇄한 예적금강 도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竺衍의 적극적인 외래도상 수용에 따른 특징이다.*br*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결과 조선 후기 예적금강상의 가장 큰 특징은 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존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海印寺本의 예적금강상처럼 左·右面에서 불꽃을 내뿜는 표현은 중국·일본의 예적금강상과 다른 조선 후기 예적금강상의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같은 배경에는 臨濟宗風을 지향하여 『楞嚴經』을 중시한 조선 후기 불교의 특수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