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Baeowa Kim Sang-suk's (1717-1792) Adoption of Zhong You's Calligraphic Style and Its Significance
문화재청
Published: January 2012 · No. 275·276 · pp. 119-148
Full Text
Abstract
朝鮮 후기에 활동한 ?窩 金相肅(1717~1792)은 18세기 楷書의 명가로 꼽힌다. 그는 특히 鍾繇(151~230)의 서풍을 재현한 ‘작은 楷書(小楷)’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 동시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평생 동안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아 존경과 사랑을 받기도 했다.*br* 그의 해서는 ‘鍾繇體 楷書’라는.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서체였으며 그가 살던 집이 社稷壇 옆에 있었던 이유로 ‘稷下體’라고 불렸다. 鍾繇의 楷書는 훗날 東晉의 王羲之 楷書體 성립에 영향을 주어 ‘魏晉楷書’, 혹은 ‘魏晉古法’으로 불리며 해서의 규범이 되었다. 18세기 조선의 해서 역시 위진고법을 지향하였지만 그 고법은 二王이었다.*br* 그러나 김상숙은 魏晉古法을 지향하면서 王羲之·王獻之 부자에 머무르지 않고, 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전범을 종요체에 설정하였다. 주로 法帖에 수록된 소수의 鍾繇 글씨를 보고 익혔지만 매우 뛰어난 직관으로 종요체 해서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자기 방식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런면은 동시대 書家들이 해서의 典範을 왕희지에 고정시켜 이해했던 통념을 뛰어넘은, 독보적인 성취로 보아야 한다.*br* 그러한 성취의 대표적인 예로서 〈菊衣頌〉(1757)은 김상숙이 자기 방식으로 쓴 鍾繇體 楷書의 典型이라고 할 만하다. 날카로운 起筆이나 가로로 더 길게 뽑아 만든 형상은 鍾繇를 무조건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담아내는 데에 이른 경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종요체는 그의 일생 동안 지속되어 노년기에 二王의 해서를 수용한 작품에서도 종요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br* 二王을 古法으로 설정하고 이를 지향했던 18세기 書壇에서 김상숙이 종요를 선택한 것은 당시의 독특한 문화 찰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 김상숙과 그의 교유인물들은 東漢 말기의 儒者들을 賢士로서 추숭하는 경향이 있었고, 東漢이후 東晉에 이르는 시대에 활동했던 賢士들의 학문과 예술을 흠모하며 古人의 삶을 자신의 생활에 재현하려 했다. 〈菊衣頌〉은 단순한 글씨에 그치지 않고, 18세기 문인들 가운데 남다르게 상고적인 경향을 보이는 집단을 상정할 수 있게 하여,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18세기 조선 선비문화의 한 면을 주목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따라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매우 높은 만큼, 김상숙의 종요체 수용은 그와 주변의 문사들만의 특이한 문화활동을 보여주는 단서로서 중요한 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