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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Ceramic Memorial Tablets (Jiseok) of the Joseon Period

김세진

충북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1 · No. 271·272 · pp. 7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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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誌石은 한사람이 살아 있을 때 삶의 궤적을 기록하여 墓속에 매장한 물건으로 墓와 죽은 사람을 결부시켜 후세에 오래토록 전하려는 것이다. 誌石에 기록된 내용은 本貫, 성명, 조상의 계보와 관직, 생일과 사망일, 관직과 평생의 행적, 가족관계, 墓의 위치와 坐向 등이 있다. 중국으로부터 석제 지석의 전통이 유입되어 고려시대에는 석제 지석이 주류를 이루지만, 조선시대에는 새롭게 자기제 지석이 제작된다. 본고에서는 주자가례의 수용에 따른 자기제 지석의 변화와 특징을 통해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른 사회 계층간의 특징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br* 조선시대 자기제 지석의 제작배경은 두가지 요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주자가례가 수용됨에 따라 유교식 상장례제도가 정착되었고, 그에 따라 지석의 매장이 일반화되면서 지석의 사용이 증가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18세기 이후 양반인구의 증가와 의식이 확대된 결과, 유교식 상장례를 실천하고자 했던 향유층이 증가되었고 그에 따라 자기제 지석의 사용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둘째, 성리학에 근거한 차별화된 예법에 따라 지석의 제작이 이원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왕실은 석제 지석, 사대부는 자기제 지석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장례문화의 규제와 석제 지석의 제작 및 사용에 따른 폐단의 대두로 왕실은 자기제 지석의 사용을 권고하였다.*br* 자기제 지석의 기록방법별 특징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었던 시문기법의 상·하한연대 기준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한 자기제 지석의 서체 변화로 볼 때, 우산리 9-3호 출토 〈白磁陰刻壬寅銘誌石片〉의 간지를 1482년으로 해석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가마의 운영시기를 15세기 후반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자기제 지석의 사용계층 분석을 통해, 장방형 청화백자지석은당상관을 중심으로 사용하였고, 이는 청화안료가 일부 상위계층에서 향유하는 전유물이자 과시품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대부를 중심으로 사용하였던 자기제 지석은 내용의 기술이나, 형태의 변화에서도 관등에 큰 영향을 받고 있어 조선이 엄격한 계급적 사회였음을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