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A Study on the Iconography and Faith of White-Robed Avalokitesvara Wall Paintings in Late Joseon
국립청주박물관
Published: January 2010 · No. 265 · pp. 197-231
Full Text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시대 사찰의 중심전각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약 10여 점의 백의관음도를 통해 조선시대 백의관음 도상의 특징과 신앙, 양식적 특징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데 중심을 두었다. 대략 2m 남짓한 후불벽 뒷면의 공간은 일반적으로 법당 내의 장엄과 예배를 위한 준비공간으로, 혹은 보조·정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이 공간을 또 다른 신앙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그 예배의 주체자로 백의관음을 가시화한 현상이 등장한 것은 주목을 요하고 있다.*br* 조선 후기 불경의 간행은 사찰의 승려들이 주도하였다. 이 전적들은 당시 중국에서 입수한 명말청초에 새롭게 편찬·간행된 것이었으며, 이 전적들이 다시 편찬·언해 등의 찬집을 거쳐 조선후기 사회에 유통되었다. 백의관음 신앙은 당시 조선 후기의 득남을 희구하는 조선 사회에 널리 퍼져 신앙되었던 것 같다. 당시의 관음경전과 김만중의 소설『사씨남정기』를 통해 백의관음은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 아들을 주는 신앙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전이라는 종교적인 영역을 넘어 소설 속에서 그러한 요소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신앙이 사회 저변에서 신앙되고 있다고 판단된다.*br* 후불벽 이면에 그려진 백의관음도는 원래 조선 전기부터 18세기까지 관음보살도의 주제로 가장 빈번한 조성 예를 보인 수월관음도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백의관음의 유행과 함께 수월관음도상에 백의가 입혀진 것으로 생각된다. 경남 창녕 관룡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수월관음벽화는 18세기 주불전 후불벽 이면에 조성되었던 수월관음도상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백의관음 신앙과 관음경전의 영향에 따라 관음보살 도상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후불벽 이면 벽화에도 백의관음 도상이 적용되게 되었다.*br* 후불벽 이면 관음벽화는 대체로 18세기 이후에 조성되고, 이후 후보된 경우가 다수라고 생각되는데 도상에 있어서는 당시 유행되었던 관음경전 변상의 영향을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관음경전인『천수경』의 지송을 강조한『관세음보살지송영험전』권두 변상이나 『불정심다라니경』변상도와 같이 관음도의 배경에 암굴과 암좌가 아닌 연화형 배경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두 경전의 영향력이 감지되고 있다.*br* 후불벽 뒷면 벽화의 경우 대부분 채색에서는 근래 보수한 경우가 많아 원형의 채색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기가 힘들었고 또한 기록된 조성연대가 확인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양식적인 특성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벽화의 조성과 관련된 편년문제, 실제로 행했던 의식 등은 추후 보완할 것이다. 이 글을 조선 후기 백의관음벽화의 시고라고 생각하며 이후 개별적인 백의관음벽화의 도상과 양식적 특징과 편년문제를 더하여 총체적인 연구로 발전시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