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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rticle

Different Images of Common Gatherings as Seen in the Poetry-Painting Album of the Okgye Poetry Society and the Sugap Album

김지연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Published: January 2010 · No. 265 · pp. 16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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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두 개의 여항 집단이 제작한 시첩과 모임 그림들을 중심으로 여항인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기념화라는 형식을 통해 표출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朝鮮後期의 대표적 閭巷詩社로 알려진 玉溪詩社는 閭巷人중에서도 최고의 문화 엘리트 집단으로 주된 구성원이 京衙前, 특히 奎章閣과 그 관련 관청 소속의 서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786년 제작된 옥계시사의 첫번째 시화첩인《玉溪社十二勝帖》에는 遊興을 즐기는 都市民으로서 同人들의 모습을 소극적이나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5년 후인 1791년에 제작된《玉溪淸遊帖》을 살펴보면 유흥과 친교보다는 山水空間으로서의 玉溪의 아름다움에 점점 초점이 맞추어져 감을 알 수 있다. 특히 같은 해인 1771년에 제작된《玉溪十景帖》은 玉溪詩社의 脫世的, 理想主義的경향을 대표하는 예로, 地名이나 建築物등의 현실적 요소를 배재한 관념적 모티프에 의존하여 구성되었다. 이상화, 관념화된 十景은 자신들의 文化的正體性을 사회적 위상 提高와 연결시키지 못했던 胥吏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br* 《壽甲??帖》에 실린〈壽甲??宴會圖〉는 1756년생 계원으로 이루어진 한 甲契의 宴會를 그린 것이다. 이 모임의 계원들은 玉溪詩社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직위와 성향의 서리층을 포함하고 있었다. 옥계사의 山水위주의 그림들과는 달리〈壽甲??宴會圖〉는 악단과 기생을 초청하여 펼쳐지는 도시 유흥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기존 양반의 계회도 형태를 차용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자신들이 새롭게 누리게 된 특권에 대해 긍정하고 자부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 그림은 契會圖의 身分的, 位階的틀을 해체하고 이를 도시적 유흥의 공간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의 달라진 유흥 문화와 그 안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여항인의 위치를 암묵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br* 옥계사의 詩畵帖들과《壽甲??帖》은 상반된 形式과 再現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玉溪詩社의 모임 그림들은 玉溪라는 觀念的山水空間을 통해 文人과 處士로서의 자기 이미지를 강화하였지만 결국은 현실의 구체적 묘사를 회피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문화적 위치에 대한 불안정한 인식을 드러내었다. 반면〈壽甲??宴會圖〉흥겨운 夜會의 모습은 화평한 시대에 살며 관리로서의 특권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도시의 餘興를 즐기던, 당시 도시의 신흥 엘리트로서의 여항인들의 모습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러한 차이는 옥계시사와 수갑계 두 집단 간의 문화적, 사회적 이질성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여항인들의 자신의 주변적 위치에 대한 반응 방식의 서로 다른 예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Keywords: 기념화(commemorative painting)경아전(kyŏngajŏn신흥 엘리트(emerging elite)도회적 유흥(urban leisure)문화정체성(cultural identity)